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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이안 May 16. 2023

고정관념과 취향 사이 그 어딘가

많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공공연히 얘기하고, 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말과 글로 문제제기해 왔던 ‘고정관념’에 대해서 감히(?) 얘기해 보고자 한다. 고리타분하고 식상한 주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음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 온 고정관념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욕먹을 각오하고, 슬그머니 얘기를 꺼내 본다. 나 자신 또한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음을 고백하면서.


보통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너무도 익숙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문구는 광고 카피에서 처음 나왔던 말이다. 그것도 무려 25년 전 한 이동통신사 광고에서. 누구나가 다 아는 익숙한 말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냥 듣기 좋은 말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광고 문구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나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가 추구하는 것을 용기 있게 펼쳐 보라는 의미로 이 문구를 많이 사용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캠페인 비슷한 트렌드가 한동안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특히 강하게 작용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아마도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도덕과 예의, 수직적 위계질서 등의 영향 때문인 거 같기도 하다. 상대방의 나이가 그 사람의 능력과 가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나이가 많을수록 지위가 높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젊은 세대가 능력을 발휘하는 데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회에서, 직장 내에서 때로 젊은 사람들은 나이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틈을 찾기 어려워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젊은이들의 이탈을 야기하고, 심지어 세대갈등으로 치닫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상생활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꼰대 논란이 심심치 않게 표출되는 것만 봐도 우리가 아직도 넘지 못하고 있는 고정관념임이 분명하다. 


나 또한 나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고백한다. 50대인 필자는 내 또래나 혹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개인으로 만나는 건 별 문제가 없는데 단체(4인 이상의 모임) 모임은 최선을 다해서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생각과 취향이 거의 비슷한 서너 명의 친구와의 만남이 유일한 단체 만남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그들과 소통하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는 돈 버는(또는 증식하는) 자기만의 특별한 노하우, 맥락 없는 자식 자랑, ‘어디가 아프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등의 엄살이 대부분인데 이런 이야기들은 차마 맨 정신으로는 들어줄 수가 없다. 술도 안 마시는 나로서는 굉장히 참기 힘든 고문의 시간이다. 젊은 사람들과 만나면 뭐 하나라도 배울 게 있고, 다양한 주제로 폭넓은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하는 편이지만 아쉽게도 기회가 적다. 이런 내 생각들은 과연 고정관념 문제일까 아니면 단순한 개인적인 취향 문제일까? 


어찌 보면 나이보다 더 심각한 고정관념, 그것은 바로 이념 논쟁일 것이다. 보수는 극우 꼴통, 진보는 무조건 빨갱이 좌빨로 동일시하는 심각한 고정관념 문제 말이다. 정치적 성향은 개인의 다양한 측면 중 하나에 불과하고, 그것 만으로 한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좋다 나쁘다’로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정치적 성향은 일생동안 계속 변화할 수 있으며, 시대와 환경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개인의 가치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뿐 아니라 그의 능력, 성실성, 도덕성 등 다양한 요소들로 결정되며 평가되어야 한다.


정치적 이념에 기반한 고정관념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게 아니라 이를 의도적으로 악용하고자 하는 정치 집단 또는 언론이 교묘하게 부추겨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이해해 보려고 해도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극단적인 행태들도 분명히 있다. 상대방의 정책이나 이념을 반대하는 건 이해할 수 있으나 다른 나라 국기(미국 성조기나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들며 욕설을 퍼붓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저급한 행태이다. 이런 극단적이고 몰상식한 행위들로 인해 이념을 나누는 고정관념이 갈수록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고착화돼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과서에서 배운 걸 떠올려 보면 보수와 진보는 같은 목표를 지향하면서도 그 방법과 접근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보수도 진정한 진보도 없는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진정한 진보주의자를 선호한다). 둘 다 사회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지향한다. 다만 보수는 전통과 안정을 중시하고 점진적 변화를 선호하는 반면, 진보는 개혁과 혁신을 중시하고 급진적 변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차이는 결코 상대방을 부정하거나 적대시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고정관념과 취향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적 거부나 반대는 고정관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고정관념은 늪과 흡사하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힘든 늪. 대부분 우리는 늪에 빠져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우선 내가 늪에 빠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발버둥 치면 더 빠져들기만 할 뿐이다. 늪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도와 달라고 소리 내 외치고,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야 주위사람들도 알게 되고, 기꺼이 손을 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 UnsplashWarren W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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