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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14. 2023

그 쓰레기통은 내 거야

개인 쓰레기통을 소유하는 나라

아파트 건물 앞 놓인 쓰레기통에 무심코 폐기물을 버렸는데, 건물 주민이 화를 내며 "그 쓰레기통은 내 것이니 당신 쓰레기통에 버려라"라고 한다.


과연 이게 무슨 말일까? 아파트는 다세대 공동주택인데 여기서 쓰레기통에 니 것 내 것이 어딨나? 싶지만 실제로 '니 쓰레기통 내 쓰레기통'하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독일이다.


* 독일 전역이 아닌 일부 주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독일의 일부 주 혹은 도시에서는 '쓰레기통 개인 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다.


단독주택은 이해가 되지만, 수 십 가구 이상이 모여사는 다가구 아파트에서 개인 쓰레기통을 가지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독일에서도 이 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 독일에서 9번 이사를 하며 나도 이 제도를 경험했다. 그것도 꽤 오랜 기간.


일반적인 다세대 주택의 폐기물은 일반쓰레기/종이류/포장류/음식물쓰레기 등으로 구분되어 커다란 대형 쓰레기통에 분리수거하여 한꺼번에 모아 1-2주에 한 번 시에서 수거해간다. 그러나 개인 쓰레기통을 가지는 곳은 '집집마다' 분리를 원하는 개수대로 쓰레기통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일반쓰레기/종이/음식물쓰레기를 버리려면 총 3개의 쓰레기통이 필요하다.


독일의 쓰레기통 수거차. 사진 속 까만 쓰레기통이 60리터짜리다. (출처=unsplash)


내가 살던 집은 일반쓰레기, 음식물쓰레기, 종이류의 쓰레기통을 신청할 수 있었으며 용량에 따라 60L, 120L를 고를 수 있었다. 평생 60L의 쓰레기양이 얼마나 되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서 신청하기 전에 주택가 길거리의 쓰레기통만 유심히 보며 다녔다. 시에 '폐기물담당청'이 있으며, 이사 후 여기에 anmelden(등록)을 하면 원하는 쓰레기통을 집 앞으로 갖다 준다.




일반 가정은 60L를 신청하는데 생각보다 통 자체가 자리를 많이 차지했다. 이 쓰레기통은 위생때문에 집안에 두기는 어렵고 지하창고에 두었다가 2주마다 수거차가 오는 날 '당일 오전 7시 전'까지 길에 세워놓아야 한다. 대부분은 하루 전날 밤 9시 이후에 건물 앞 도로 한 켠에 세운다. 그래서 전날 저녁이면 밖에서 덜덜덜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울린다. 혹시 깜빡하고 수거일을 놓쳤다면 영락없이 꽉 찬 쓰레기통으로 2주를 버티거나, 별도의 쓰레기 종량봉투(6-7유로: 약 8000원)를 구매해서 거기에 새 쓰레기를 채우며 2주를 기다려야 한다.


정말이지 비효율의 극치다.

'그럼 며칠 전부터 밖에 세워두거나 아예 밖에 놓고 쓰면 안 되나' 싶지만, 거의 불가능하다. 이 제도의 핵심은 '쓰레기통 실명제'이기 때문이다(통마다 이름과 바코드 스티커가 있다). 즉, 해당 쓰레기통에 들어오는 모든 폐기물은 주인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귀찮다고 내내 밖에 세워두면 지나가는 행인에서부터 모르는 남의 집 강아지 똥까지 들어올 수 있다. 쓰레기에 이름 쓰여있는 것도 아니니 주인을 찾을 수도 없고, 영락없이 내 이름으로 처리되는 것이다. 게다가 잘못된 종류의 쓰레기가 자주 들어갈 경우, 담당청에서 경고를 주거나 벌금을 때릴 수 있다. 그래서 귀찮아도 '내 쓰레기통'을 사수하고 꼬박꼬박 당일 밖에 내놓는 것이다.

  



이렇게 비우는 것조차 귀찮은데 비우는 비용도 발생한다.

시마다 차이가 있지만 수수료는 보통 회당 3-4유로(5500원)이며, 연(年)단위로 일년치 수수료를 정액제로 계산한다. 공과금을 정액제로 내는 독일의 시스템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격주로 비우니 1년에 약 26번, 143000원을 12월 중에 자동이체하면 된다(다음 해 수수료를 선납한다).


포장류는 'Gelber Sack(노란자루)'라 불리는 봉투에 넣어 모아둔다. 매달 약 1회 무료로 수거 해 간다. (출처=unsplash)


그나마 비용과 창고의 자리를 세이브할 수 있는 방법은 '필수 쓰레기통만 구입'하는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는 일반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는 무조건 실명제로 버려야 했는데, 종이류와 포장류는 각자 모아서 근처 '재활용센터'에 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폐지와 포장류를 잔뜩 모아 한 달에 한 번, 차에 싣고 재활용센터에 갔었다. 재활용센터는 외진 곳에 있는 데다 그 많은 쓰레기를 들고 대중교통을 탈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자가용이 없다면 이용하기 힘들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다.



독일에서 무언가를 anmelden(등록)한다는 건, abmelden(해지)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초기에 등록했던 쓰레기통은 이사를 가면 해지해줘야 한다. 쓰레기통은 타인에게 이전이 불가하고 된다 해도 남이 쓰던 쓰레기통을 가져갈 사람은 없으니 무조건 담당청에서 수거한다. 따라서 이삿날에 맞춰 담당청에 해지를 하고 밖에 세워두면 알아서 가져간다.


초과로 냈던 쓰레기 수거수수료는 계산하여 계좌로 되돌려준다. 나의 경우 환불까지 약 6주가 걸렸다.

 



이 방법은 내가 여태 본 독일 시스템 중 비효율 끝판왕 중 하나지만, 사람의 습관이 무섭다고 이것도 길들여지니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쓰레기통이 작아서 자연스레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분리수거도 더 꼼꼼히 하게 됐다. 또한 길에 지저분하게 서있거나 쓰레기가 넘쳐 냄새나는 장소가 없으므로 도시 전체적으로 경관이 매우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버스역 쓰레기통과 같은 공용쓰레기통은 있다). 특히 주택가가 굉장히 정돈되고 쾌적한 게 이 제도가 가져다준 가장 큰 장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 해도 절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특히 휴가나 출장시기에 수거날이 겹치면 여지없이 이웃에게 신세를 지거나 4주 내내 쓰레기를 끌어안고 있어야 해서 정말 큰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제목, 본문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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