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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13. 2023

이직을 거절했다

이직보다 중요한 것

얼마 전 리크루터로부터 이직제안이 왔다.


우연히 내 프로필을 봤는데 적합해 보인다고 하길래 이력서를 보냈고, 동시에 그는 나에게 Stellenbeschreibung(잡디스크립션)을 보내주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불만은 없는데, 가끔 들르는 사무실이 너무 멀어서 여건이 맞는다면 옮길 생각도 있는 참이었다.


보내준 내용을 보니 업무 연관성도 일부 있었고, 무엇보다 월급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30% 인상 이라니. 슬슬 고인물로 접어드는 직장인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킬 만한 숫자였다.


몇 년 전만 같았어도 적극적으로 달려들었을 나는 의외로 고민하게 되었다.

솔직히 내가 고민하게 될 거란 생각을 나도 못했다.


나 왜 이러지?


여태 독일서 이직하면서 직장선택에는 숫자로 표시된 객관적인 기준(+같이 일할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나였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민했을까. 여태껏 남편 직장 따라 여기저기 국경 넘어 이사도 잘 다녔으면서.


일단 나는 신입도 중고신입도 아닌 경력직이고 앞으로 집중하고 싶은 직책이 뚜렷했다. 지금 여기서 단순히 업무가 좀 연관 있다고 옮기자니 잘못하면 이력서만 지저분해지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의 경험치가 약해질 수 있다.


독일인들의 제주도 마요르카에서


다음 이유로는 일 말고도 인생에서 중요한 다른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안정되고 편안한 가정, 내 집, 편안한 동네 등 긴 시간에 걸쳐 그라데이션처럼 독일정착을 해나가며 이것들이 일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상이 불만족스러우면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매력이 감소되는 걸 충분히 경험했다.


즉, 일 하나만 보고  무작정 따라가기엔 내 열정과 관심이 이미 다른 것들에 많이 분산되어 있었다.


한 차례 거절을 했는데 회사에서 꼭 면접을 봐야겠다고 나를 설득했다. 1차 면접을 본 날 오후에 2차 면접도 곧바로 진행하고 싶다고 했다.


모든 걸 나한테 맞춰줄 것이고 특히 월급과 출장비 전액 지원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 정도면 웬만해선 넘어갈 거라 생각한 것 같다.




아무튼 최종적으로 내 쪽에서 진행을 그만두었는데, 다음의 이유도 컸다.


나는 시스템이 확립된 곳. 즉 현재 회사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 규모의 기업이 좋고, 다양한 업무 툴을 사용하며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제안온 회사는 유럽 어느 국가의 공기업인데, 본국에서의 규모는 크지만 독일 사업은 이제 막 시작해서 현재는 매우 작은 조직이라고 한다. MS 오피스를 제외하고 어느 툴도, 시스템도 잡혀있지 않았다. 독일 내에서 다녔던 한국회사들의 트라우마가 다시 떠올랐다. 아무리 한국에서 날고 기는 대기업이고 심지어 업무툴이 다 있어도 결국 해외지점은 본사를 못 따라간다. 시스템도 불안정하고 체계도 없는 게 많고, 본사지원도 느리거나 적고, 최소 10-20년은 기다려야 좀 틀이 잡힐까 말까다.


결국 본국에서 덩치가 얼마나 컸든 상관없이 독일 사무실에서는 소규모로 모여서 니부서 내부서 없이 서로 챌린지 해야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이 자리의 매력이 떨어진 것 같다.


나에게 매력적이지 않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던 자리일 수 있다. 특히 소조직일수록 그런 사람들이 가는 게 맞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지금 종사하는 포지션의 경력 쌓기와 일상을 지키는 게 돈보다 훨씬 중요했다.


나중에 후회하려나? 글쎄, 안 할 것 같다.


나는 생각이 많지만 고민은 길게 안 하는 편이다. 짧은 시간 깊게 고민하고, 결정을 번복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테니까.


내가 무엇을 얼마나 더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고 싶어 하고 얼마만큼 그 안에서 발전하고 싶어 하는지 오히려 스스로에 대해 더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인생이란 그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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