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고독 생각
감기처럼 찾아오는 향수병 외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게 하나 더 있으니, 바로 고독이다.
외로움과 고독은 친구처럼 함께 언급되는데, 외로움은 '홀로 되어 느끼는 쓸쓸함'이고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다(출처=네이버국어사전). 혼자 있어도,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언제 어디서든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외로움보다 고독에 가깝다.
내 나라 안에서도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나오면 생경한데 남의 나라에 살면 그 느낌은 두 배, 아니 수 십 배가 된다. 생경함은 고독을 동반하고 고독은 다시 생각을 낳는다.
재작년 여름이었을까. 해도 화창하고 녹음도 푸르고 남편과의 사이도 문제없고 직장도 잘 다니던 시기에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고독이 몰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수 십 가지 생각들이 쏟아졌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다시 새로운 주제에 대한 생각을 일으켰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대한 마인드맵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대부분의 주제는 '나의 과거'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질주는 '굳이 삶을 더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염세적 질문으로 끝났다. 매일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약 한 달간 지속되었다.
보통 독일은 여름이 가장 봐줄 만한 날씨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거의 없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당시 내 내면은 계절로 치면 가을과 겨울 어디쯤이었던 것 같고,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떠나고 싶었다. 그맘때쯤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했던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나한테 6개월만 주어지면 좋겠어. 어디서도 튀지 않으면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아시아 어딘가로 가고 싶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로 어디를 간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생각의 늪에서 벗어나보려 머리도 짧게 자르고 안 입던 옷도 입어봤지만 소용없었다. 불면증도 생기는 등 확실히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에 무작정 온라인 서점을 뒤졌고 <스톱씽킹>이라는 책을 찾았다. 그리고 이 책은 내 머리를 한대 때려서 고독과 생각의 구렁텅이에서 끄집어내 주었다.
나의 생각고리는 과거를 돌이켜보는데에서 시작되었는데, 저자는 상담에서 쓰는 유사한 방법인 트라우마를 끄집어내어 돌아보게 하는 것이 결코 내담자에게 도움되는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과거를 얘기할 때마다 그 기억을 매번 끄집어내야 하고, 그 기억으로 인해 나쁜 경험을 다시 겪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생각 없이 느낌이나 감정도 없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 만 가지 생각을 하는데, 생각이 느낌을 만들고 느낌은 감정을 생산하기에 결국 불행이나 우울을 일으키는 감정은 나의 어떤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중요한 점은 이 생각이라는 놈이 '오직 내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생각의 주체인 내가 생각을 무작정 믿고 따라가면 결국은 그놈이 나를 좀먹는 상황에 이른다. 내가 만들어낸 생각을 스스로 쫓으며 그걸 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를 고통에 맡겨버리는 격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는 방법은 어떤 생각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물처럼 흐르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계절에 따라 다른 성질의 바람이 스쳐가듯.
그렇다. 매 순간을 분석하고 점수를 매기고 평가하면 결국 뭘 하든 결점을 찾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나의 슬럼프는 현실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오직 '생각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기반성이란 단어로 포장해 보지만 솔직히 나의 부정적인 면을 마주하고 그것을 분석하는 일을 매일 하고 있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어차피 인간은 현재만을 살 수 있으며 나 역시 오늘의 지금을 살뿐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건 과거의 나이지만 그에 대한 기억 자체는 아무런 힘이 없다. 부정적인 주제를 파고 싶은 생각이 들 땐 '생각도 좋은데 일단 지금 할 일에 집중하자' 또는 '그만 좀 생각하고 지금 쓰는 글이나 잘 써'라는 생각으로 고리를 끊어냈다.
내 인생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한 그날부터 내 마음은 여전히 평안하다. 책 한 권으로 새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 병원방문이나 약 한 알 없이 이겨낸 내가 대견하면서도 책이 주는 힘이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걸 경험했다.
나처럼 유학이나 타지생활 혹은 일상에 지친 독자분이 있다면 일단 '그 생각에 먹이를 주지 않는' 연습을 권해드리고 싶다.
제목 사진출처: Noah Sillima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