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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Dec 01. 2023

일상이 무료하고 지루할 때

독일에서 인생노잼시기 

인생을 살다 보면 일상이 무료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쳇말로 인생의 노잼시기라고 하는데 새로운 장소에 놀러 가도 맛있는 걸 먹어도 딱히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 시기이다. 


독일은 한국만큼 시각을 사로잡는 유흥거리, 미각을 사로잡는 맛집,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정신없는 장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노잼시기가 더 자주 찾아온다. 유럽도 어쩌다 한 번 와야 이쁘고 낭만적이지, 살기 시작하면 이쁜 것보다 '저 집 창문은 얇아서 엄청 춥겠네'하는 식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먼저 보인다.


이전에는 노잼시기가 올 때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새로운 유희거리를 찾거나, 일부러 여행을 떠나거나, 가만히 앉아서 수 만 가지 생각을 생산해 냈다. 그러나 이는 '쓸데없는 도파민 생산하기'와 '생각 파기' 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된 건 다음의 방법들이다.


1. 작은 변화 주기

매일 반복되는 루틴에 아주 하찮은 변화를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침식사 메뉴를 바꿔본다. 오늘은 밥에 반찬, 내일은 누룽지, 모레는 단백질빵 등 빵종류가 다양한 독일문화를 십분 활용하면 내 아침식사는 독일인들보다 최소 2배 풍부해질 수 있고, 어떤 날엔 전날부터 아침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출근 길 루트를 바꿔보는 식의 변화도 도움이 된다. 나는 효율을 추구하는 성격 탓인지 괜히 루트를 바꿔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만드는 게 오히려 더 스트레스라 이 방법은 쓰지 않는 편이다.


2. 내가 잘 아는 분야의 커뮤니티 가입하기

한인커뮤니티에 들어가란 소리가 아니다. 해외에서 규모가 작은 한인사회는 발 없는 말을 천리 보내고, 없는 말을 생산하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 한다. 독일산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혀 활동하지 않는 이유다. 


대신 '한국음식 요리하기'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온라인 게시판에서 가볍게 활동하는 그룹인데, 대부분 한국음식에 관심이 많은 독일인들이나 독일에 최소 2-30년 이상 사신 한국분들이 계신다. 나는 여기서 독일인들의 질문에 답해준다. 식재료 파는 곳, 고춧가루 종류, 레시피 등을 공유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취미에 진심인 독일인들을 볼 때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다. 직접 김치 담그기는 기본이고, 집에서 가래떡을 만들고 항아리에 장까지 담그는 독일인들을 보고 있으면 혀를 내두르면서도 한국인인 나도 배울 점이 많다.

나의 최애음식 라볶이.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요리한다. (출처=(왼)unsplash, (오) 직접촬영)


3. 가까운 미래를 계획하기

일상이 지루한 이유 중 하나는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너무 먼 미래 말고 일주일, 혹은 1-2개월 뒤의 가까운 미래를 계획한다. 한 달 뒤면 새해이고, 2월엔 설이 있다. 우리는 매년 이맘때쯤 시댁이나 친정에 간다. 해외에 살아도 자주 모국을 가야 가족의 끈끈함을 유지하고, 사회변화에 뒤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에 장기거주하면서 5년, 10년 넘게 모국에 안 가면 그 이전 옛날에 생각이 멈춰있기 십상이므로 의식적으로 변화를 업데이트해줘야 한다. 아무튼 한국 갈 생각에 미리 일정을 짜면 지루함이 날아간다. 


4. 충족되지 않는 것을 구체화하기

지루함은 부정적 감정에 가깝기에 불만으로 이어지기 쉽다. 만약 불만이 커지면 정확히 어떤 점이 불만인지, 뭐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지 대상을 구체화해본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최근 나의 가장 큰 지루함은 업무가 너무 똑같아서 재미가 없는 점이었다. 그래서 매니저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새해에 업무분장을 새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시간이 생기면 오래 묵은 토픽을 해결하거나 파트너사의 일정을 체크하는 등 작은 문제라도 되도록 구체화시키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지루함이 많이 사라졌다.


4. 매일을 기록하기

일상을 기록하는 것도 지루함을 탈피하는 방법이다. 겉보기엔 매일매일이 쳇바퀴 굴러가듯 똑같이 보여도 날마다 생각하는 것, 관심 있는 것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기록으로 남겨야만' 알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큰 치유법이자 성장방법이기도 하다. 기록하며 나를 되돌아볼 수 있고 지루함이나 우울에서 벗어날 수도 있으며, 글쓰기 능력까지 키워주니 일석삼조 이상을 가져다주는 활동이다.




사실 일상이 지루하다는 건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뜻이다. 매일매일이 고되고,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고, 해결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다면 지루하다는 생각조차 할 틈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지루함이 찾아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안정적인 일상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고통 불안이 아닌 그저 지루함 만으로 지나가는 오늘에 감사합니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본문 사진출처: 직접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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