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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Dec 03. 2023

이대신 잇몸으로

완벽하지 않으면 어때

남편도 나도 이유 없이 갑자기 먹고 싶어 지는 고향의 맛(?)이 있다. 이를테면 남편은 커다란 솥에 끓인 훠궈나, 두유나 흑임자죽과 함께 아침에 먹는 油条(요우티아오), 나는 뚝배기에 팔팔 끓인 김치찌개 혹은 재래시장에서 파는 무심하게 파는 국수 등이 그것이다. 


사실 독일이라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다. 차를 끌고 가더라도 아시아마트 큰 곳 몇 군데만 돌면 순대부터 시작해서 닭발, 곱창까지 전부 다 구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럴만한 가성비가 안 난다는 것, 힘들게 구해도 내가 기대한 맛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현지에서 먹는 그 푸근하고 집 같은 느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먹어야지. 




타지생활이 길어지다 보면 가성비도 안 나오는 소비를 할 바에 어떻게든 현지재료를 사용해서 내 나라 음식으로 재탄생시키려는 꼼수, 좋은 말로 하면 스킬이 늘어나는데 최근에 아주 만족스러운 품목이 있었다. 


이것은 추로스인가 요우티아오인가 (출처=직접촬영)


마트에서 신상품을 스캔하다가 냉동 추로스를 발견했다. 중국남편이랑 살아서 그런지 내 눈에는 추로스라기보다 油条(요우티아오)로 보였다. 야심 차게 사다가 설탕을 뿌리지 않고 내놓았더니 짭짤한 게 영락없이 요우티아오였으며 남편도 맛있다고 했다.


실제로 추로스의 기원 중 중국 명나라의 요우티아오가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두 음식의 모양새와 만드는 방식이 비슷하다. 유럽은 달달한 간식 (독일이나 스위스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 인기식품)으로 먹는 반면, 중국에서는 설탕을 뿌리지 않고 두유 혹은 죽과 함께 간편한 조식으로 먹는 차이가 있다.

 



두 번째는 훠궈다. 우리는 훠궈 블록을 쟁여두었다가 집에서 채소와 고기를 준비하여 홈훠궈를 줄곧 해 먹었는데, 몇 년을 하다 보니 이것도 귀찮아져서 최근에는 '冒菜(마오차이)'로 눈을 돌렸다. 


마오차이 키트. 1인분으로 충분하다. 가격은 약 6유로 (출처=직접촬영)


冒菜(마오차이)는 굳이 분류하자면 훠궈에 속하는데, 훠궈가 혼자 먹기 부담스러워서 1인용으로 나온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라탕과 구분되는 점은 마라탕은 땅콩소스나 각종 장을 얹어먹는 대신, 마오차이는 진짜 미니훠궈처럼 생겼다. 


우리가 즐겨 먹는 사진 속 마오차이는 아시아마트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심지어 뜨거운 물도 필요 없다. 재료 다 넣고 물 붓고 기다리면 알아서 끓고 조리가 완성된다. 또한 채소밖에 없어서 부담도 더하다. 




한국인인 나는 종종 '옛날 초등학교나 중학교 앞에서 사 먹던 간식'이 떠오른다. 출생년도가 80년대 중후반-90년대 초반이신 독자분들은 아실 거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파는 콜팝, 떡꼬치, 피카츄돈까스.. 그땐 학교 끝나고 엄마가 주신 용돈으로 하나씩 사 먹는 게 어찌나 맛있던지. 여느 맛집이 부럽지 않았다. 


홈메이드 떡꼬치. (출처=직접촬영)


독일에서 집들이를 하면 우리는 샐러드 외에 거의 한/중 음식을 한다. 그때 빼놓지 않는 단골메뉴가 떡꼬치다. 떡의 식감은 독일인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지만 한국문화가 많이 알려진 최근에는 떡을 모르는 독일인을 찾기 어렵다. 심지어 일부러 사서 요리하는 독일인들도 많다.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타지에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구할 수 없으면 가내 수공업으로 고향의 음식을 충족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산다.


제목 및 본문사진: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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