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단톡방에 알람이 울렸다.
"Danke für die Schokolade! (초콜릿 고마워요)"
메시지를 보낸 이웃은 사진도 함께 올렸다. 보아하니 누군가가 현관문 앞에 초콜릿을 둔 것 같다. 둘 사이(주고받은 사람)에 고마운 일이 있었나? 그리고 몇 시간 뒤, 무심코 현관을 열었더니 우리 집 문 앞에도 같은 초콜릿이 빼꼼히 서있다. 작고 귀여운 곰모양의 린트 초콜릿. 아마 어느 이웃이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돌린 것 같다.
작은 선물이지만 기분이 참 좋았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마음에 닿는 건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것 같다. 작지만 마음을 표현하는 것, 다소 서툴러 보이지만 잘 지내보자고 손 내미는 것. 이사 오면 이웃에게 떡을 돌리던 옛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초콜릿을 집 안으로 가져오고 몇 분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초콜릿을 오랫동안 안 가져가는 집은 사람이 없다는 건데,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이렇게 주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너무 염세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연말이 다가오면 독일엔 좀도둑이 기승을 부린다. 가족에게 가느라 집을 비운 틈을 타 들어오는 도둑들이다. 심지어 얼마나 간이 큰지 대낮에 현관문을 뜯고 들어오기도 한다. 얼마 전 이쪽 지역에서도 좀도둑이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어느 건물은 철로 된 건물 문까지 뜯고 대담하게 들어왔다. 신고가 많았는지 지역 신문에 기사도 나왔다.
"무슨 요즘같이 카메라 많고 보는 눈도 많은 시대에 좀도둑이야" 하실지 모르나, 독일은 감시카메라 수가 한국의 1/10도 안 되며, 열쇠형 현관문이 99%이기 때문에 여전히 구식으로 문을 뜯거나 철사로 따서 들어오는 도둑들이 많다.
주민들의 걱정과 경계가 심해지면서 카메라 설치에 대한 논의가 우리 동네에도 진행되고 있는 중이지만, '집주인 과반수 동의' 없이는 설치 자체가 불가능해서 시간이 참 오래 걸린다. 게다가 대담하게 문으로 들어오는 도둑들도 있기에 이렇게 집 앞에 무언가 두는 것은 잘못하면 '이 집 비었다'고 광고해주는 격이 된다. 작은 물건이라면 현관보다는 우편함이 낫다.
좋은 의도와 따뜻한 마음으로 하는 행동 뒤에 이런 걸 걱정해야 한다니, 참 씁쓸하다.
하긴, 차량 블랙박스도 없는데 무슨 감시카메라를 바랄까. 2024년 7월부터는 새로 등록하는 차량에 한해 블랙박스를 의무설치하도록 하는 법이 시행된다고 한다. 2024년이 돼서야 블랙박스 설치에 적극적인 독일! 개인정보보호가 지나치다 보니 가장 선두에 있어야 할 안전과 보안의 우선순위가 밀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게다가 '나 카메라에 찍히는 거 죽어도 싫어' 하는 주민이 과반수가 넘으면 감시카메라 설치마저 무산된다. 포인트 카드에 자기 이름이랑 주소 쓰는 게 싫어서 평생 마트에 가면서도 카드를 안 만드는 독일사람들이 많다. 이토록 보수적인 독일 주민들이 과연 카메라설치에 동의할지, 아니면 결국 각자 알아서 몇 천 유로씩 들여 보안시스템을 마련해야 할지 결과가 기대된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