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밤 Dec 08. 2023

제네바에서 찾은 인심

스위스에서 이런일이?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소위 '인심'이라고 부를만한 종류의 서비스는 자연스레 포기하게 된다.


물과 화장실이 유료인 건 당연하고, 이태리의 경우 식당에 앉았다 하면 자릿세와 식기 사용료가 인당 2-3유로가량 붙는다. 식당에 음식을 먹으러 왔고 손으로 먹을 거 아니면 식기를 쓰는 게 당연한데 그 부분까지 돈을 받으려는 게 자본주의의 끝판왕을 경험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제는 직원이 뭔가를 제안하거나 내밀면 "유료입니까, 무료입니까?"를 습관처럼 묻는다. 유럽인심인 줄 알고 다 웃으면서 받았다가는 영수증 길어지고 지갑만 가벼워진다. 


그런데 얼마 전 유럽인심이란 것을 경험했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물가가 아주 비싸기로 소문난 스위스에서.




롤렉스 본사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 갔던 날이다. 시내를 둘러보고 롤렉스 본사 근처까지 갔을 즈음 점심때가 되어 별생각 없이 다소 허름한 스페인음식 전문점을 찾았다. 주변에 눈에 띄는 식당이 거기뿐이었다. 


(좌) 롤렉스 본사 / (우) 식당 내부 사진 (출처=직접촬영)


식당의 인테리어는 아주 간소했으며 의자나 테이블은 딱 봐도 연식이 최소 우리 나이만큼은 된 것 같았다. 직원분이 영어도 독어도 불가, 오직 불어만 구사하는 걸 보고(제네바는 프랑스권이다) 제대로 왔다 싶었다. 식당을 둘러보니 동네 마실 나온 듯한 차림의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랜만에 손짓발짓 구글번역기 동원해서 주문하니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든다. 독일에 산 이래로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 일부까지 독일어권은 모두 익숙하기에 사실상 여행자의 느낌을 잊고 산지가 오래인데 오히려 신선하고 재밌었다. 


주문한 메뉴와 서비스로 나온 음식. 작은 접시들이 서비스다. (출처=직접촬영)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열심히 먹고 있는데 직원분이 갑자기 식탁에 뭘 탁 놓고 가신다. 양념에 무친 삶은 오징어와 다소 엉성하지만 맛있어 보이는 감자튀김이다. 해산물은 가격이 꽤 나가기에 우리는 불안이 엄습하여 손도 대지 않고 접시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직원분을 쳐다봤다. 뒤통수에 쏘이는 시선을 감지한 직원분이 씩 웃으며 한마디 한다. 


"써-비쓰!"


그러고 보니 모든 식탁에 같은 음식이 놓여있다. 나이가 지긋하신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담소를 나누며 이미 음식을 먹고 계셨다. 


이게 가능하다고? 스위스에서? 


놀라기가 무섭게 또 다른 한 접시를 탁 놓고 간다. 이번엔 새우튀김이다. 왜 이 집이 잘되는 줄 알겠다. 인심과 친절 그 자체다. 동네장사는 인심이라는 공식이 한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도 통하나 보다. 게다가 음식맛도 제법 훌륭하다. 팁강요는 없었지만 양질의 서비스를 맨입으로 먹을 수 없었기에 팁도 충분히 드렸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기대하지 않은 대접을 받아서 그런지 그날 제네바에 머무는 동안 기분이 참 좋았다. 다음에 제네바에 들르면 다시 그 식당에 갈 생각이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