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밤 Dec 18. 2023

독일사람과 대화하며 상처받으셨나요?

그들의 소통방식

독일 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 중 '무뚝뚝함'과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다. 

이는 다소 딱딱하게 들리는 언어적 특성에서부터 무표정한 독일인들의 모습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다. 


심지어 편견을 가지지 않던 사람도 독일인을 실제로 겪으며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이 굳어지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는 독일인들의 소통방식 때문이다. 특히 리액션이나 안부인사를 주고받으며 친밀함을 느끼는 한국분이라면 무의식 중 독일인들에게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을 확률이 높다. 




# 사례 1. 일방적인 연락

와츠앱(서양권 카톡)을 통해 친구한테 연락했고 분명 '읽음'표시가 되었는데 이틀, 사흘이 지나도 답변이 오지 않는다. 내 연락이 씹힌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러다 일주일 혹은 한 달 뒤에 마치 방금 받은 문자인 양 답변이 오거나, 아예 오지 않는다. 


# 사례 2. 수술받는 동료에게 안부 인사를 했더니

직장 팀원 동료의 캘린더에 수술일정이 있어서 '수술 잘 받고 빨리 회복했으면 한다'는 안부 인사를 남겼지만 역시 '읽음'표시만 될 뿐, 어떠한 답장도 오지 않는다. 마음 써서 일부러 연락을 남긴 사람만 괜스레 민망하게 되었다.


# 사례 3. 지인에게 상당히 큰 호의를 베풀었다

친구의 친구, 즉 나와는 거리가 있는 독일 지인이지만 한국에 놀러 온다고 해서 우리 집 방을 내어주고 심지어 부모님께서 비용까지 부담해 주시며 여행을 시켜줬다. 그랬더니 밥을 사기는커녕 독일에 가서도 입을 싹 씻고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기분이 나쁠 뿐 아니라 부모님한테도 죄송스러웠다.


# 사례 4. 밥 한번 먹지고 하니 돌아온 말

인사 겸 '밥 한번 먹자'라고 하니 '언제 몇 시에 너희 집으로 가면 되겠냐'라고 바로 구체적인 일정을 묻는다. 한국식 인사가 오해를 불렀다는 걸 곧 알았지만 거절할 수 없어서 결국 사비로 식사를 대접했다.


# 사례 5. 필요할 때만 친구/지인

평소에는 안부인사나 생일 축하조차 없다가, 갑자기 '나 너희 동네 가는데 재워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온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프레젠테이션에 쓸 자료를 번역 좀 해달라고 대뜸 메일부터 보내고 근무 시간에 전화를 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 사례 6. 초대를 받았는데 받은 게 아니다

친구의 부모님께서 식사초대를 하셔서 선물까지 준비해서 식당에 갔는데, 더치페이를 했다. 먼저 밥먹자고 한 적도 없고 상대방이 먼저 호의를 보인거라 일부러 밥값 맞춰 선물까지 사간건데 무언가 찝찝한 느낌이 든다.




위 사례들은 나와 독일 사는 지인들이 직접 경험한 일로, 모두 독일인들의 소통방식으로부터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경우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첫번째 이유는 사람by사람 즉, 하필 그 독일인이 예의나 눈치가 없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러나 빈도가 꽤 높고 비슷한 유형인 걸 보면 일반적인 특징도 한몫하는 것 같다.


독일은 한국대비 집단으로 뭉치는 문화가 적고, 감정표현이나 리액션 자체가 풍부하지 않다. 뒤로는 다른 생각을 해도 겉으로는 섣불리 잘 표현하지 않는데 이런 점이 일본과 많이 닮아있다. 오죽하면 독일은 유럽의 일본, 일본은 아시아의 독일이라고 할까. 또한 인사치레나 이어지는 대화가 없는 안부형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덧붙여, 대화상대인 우리는 외국인인지라 아무래도 같은 독일인처럼 신경을 안 쓰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외국인과 이민자비율이 높은 나라라도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외모마저 확연히 다른 아시아인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그저 스쳐가는 서양인 1, 서양인 2와 같이 마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게임 캐릭터와 같은 존재에 불과할지 모른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어도 외모가 서양인이면 "한국어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듣듯, 우리 역시 독일에서 수 십 년을 살아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독일어 좀 하는 외지인'에 불과하다.




사람 간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독일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을 확률이 높다. 예전에 내가 그랬고, 지금도 관계가 소중한 건 변함없지만 일단 나를 지키기 위해 섣불리 연락하지 않으려고 한다. 연락하면 기대하게 되고, 기대하면 실망이 커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세상에 '나 자신' 말고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 사람 간의 관계에서 중립을 지키려면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도 될 만큼'만 베풀고 다른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