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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Dec 19. 2023

독일에서 12월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기다리다 봄이 올 것 같아

독일의 겨울은 한국보다 온도 자체는 높으나 추위의 성격이 달라서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추위는 한국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영하 5도에도 습도가 높은 nasskalt(습한추위)에 해가 없고 안개가 짙게 깔려서, 길 한복판에서 귀신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칙칙한 분위기와 뼈를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의 싸함이 있다. 


독일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겨울하늘. 해가 없다. (출처=직접촬영)



독일 겨울을 나기 위해 매년 이것저것 하는 일들이 있는데 올해는 마음먹고 두꺼운 커튼을 달고자 Baumarkt(자재마트)에 갔다. 독일의 자재마트에는 집에 관련된 온갖 자재들을 판매할 뿐 아니라 마트소속 설치기사들이 있어서 바로 설치신청을 할 수 있다. 


커튼 레일을 고른 당일, 설치 신청도 함께 했다. 그게 12월 초였다. 

설치는 종류를 불문하고 신청과 동시에 설치일정이 잡히지 않는다. 마트에서 신청을 하면 2주 이내로 설치기사가 고객에게 전화를 한다. 그다음에 '진짜 설치날짜'가 잡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빨라도 물건 구매 후 설치까지 꼬박 3주가 걸린다. 담당 직원은 자신 있게 다음 주 내로 기사의 전화가 갈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었다. 


독일은 12월 10일경을 기점으로 새해 초인 1월 첫째 주까지 인력이 반으로 줄어든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모아둔 휴가를 몰아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연말만 되면 병가율도 굉장히 늘어난다. 바이러스가 11월까지 쉬다가 12월에 갑자기 활동이 왕성해지나 보다. 


풀로 근무하는 회사들도 근무시간이 주 36-40시간이고 매주 금요일은 오후 3시면 퇴근자가 속출하는데, 여기에 연말+크리스마스+휴가+병가까지 겹치면 그냥 장소 불문, 올스톱 된다고 보면 된다. 이맘때쯤 한국서 독일로 소포를 보낸다면 평소의 2배 시간이 걸릴 것을 예상해야 한다. 


다시 나의 커튼 이야기로 돌아와서, 신청 후 2주 반이 지나자 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이 정도면 독일에서도 꽤 오래 기다려준 편이다. 마트에 들러 상황을 물어보니 더 뒷골이 당기는 이야기를 해준다. 




일단 연락을 주기로 했던 설치기사가 휴가 3일 전부터 새로 들어온 신청을 다 무시하고 자기 휴가를 떠났다. 즉 12월 10일부터 휴가인데 12월 7일부터 들어온 설치건들은 다 무시했다. 게다가 1월 초까지 휴가라 아무리 빨라도 1월에나 '전화'를 준다고 한다. 그 말인즉, 설치는 최소 1월 중순이나 말에 가능하다는 뜻이다. 


커튼레일 설치하는데 무려 한 달 반을 꼬박 기다려야 하는 곳 - 아주 현실적인 독일의 모습이다. 


여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당시 내 신청을 받은 담당 직원이 실수를 하여 배송비 20유로(28000원)를 추가하지 않았다. 직원 패널티로 고객에게 무료배송을 제공 해줘야 하는데, 이건 부서장 권한이라 부서장 승인이 나야 한다고 한다. 그럼 부서장은 어디 있나? 역시 휴가 중이다. 


결국 나는 해가 가장 짧고 추운 달에 커튼 다는 것을 포기했다. 


그 외에 현관문 안전장치 설치건도 있어서 이에 관해 문의하니, 이번엔 아예 설치 불가능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이유는 설치기사가 '무기한 병가'를 썼기 때문이다. 직원 누구도 기사가 언제 복귀할지 모르고 있었다. 


작은 마트 안에서 나는 독일 그 자체를 경험했다. 느린 절차+연말특성+병가와 휴가의 컬래버레이션+고객 편의보다 절차가 우선인 시스템 - 이것들의 합계 값은 바로 '독일'이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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