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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16. 2023

어디가 아픈지 왜 궁금해요?

독일직장의 병가

살다 보면 몸이 아픈 날이 있다. 날씨 탓이든 지병이 있었든 안 아프고 평생 튼튼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성인이 되어 해외생활을 하면 그저 한국에서 엄마가 해준 집밥이 그리워서 향수병에 아프기도 하고, 요즘같이 먹거리가 풍부한 시대에 웃기지만 영양이 부족해서 아프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영향 불균형이 오거나 음식의 결과 질이 한국에서 먹던 것과 달라서 몸에서 받아들이는 데 거부반응이 병으로 나타난다. 태어나고 다 자랄 때까지 대한민국 땅에서 나고 파는 음식만 먹다가 갑자기 어디 지구 반대편으로 와서 같은 음식을 먹으려고 하니 그게 되나. 당연히 잘 안 된다. 


음식과 더불어 날씨도 한몫한다. 매일 해가 뜨는 게 당연했던 한국과 달리 독일은 해가 뜨는 것에도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평생 생각지도 못했던 비타민 D도 고용량으로 챙겨야 하고, 해만 나면 냅다 집밖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해가 불규칙하고 짧아지는 계절이 오면 몸도 더 자주 아프다. 




몸은 다양한 이유로 휴식을 요구하는데, 우리의 일은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일을 하는 이상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는 게 모든 현대인들이 병을 키우는 고질적인 이유인 것 같다. 


어쨌든 아파서 업무가 불가하면 회사에 병가를 써야 한다. 아파서 오늘은 쉬겠다고. 


독일회사들은 통상적으로 병가를 쓰는 오전 당일, 늦어도 오전 9시까지는 매니저와 총무를 통해 병가를 알리게 되어있다. 매니저는 승인의 의미로 "Gute Besserung! (쾌유를 빌어!)"라는 말과 함께 그날은 공식적으로 허가받고 쉬는 거다. 이게 끝이다. 더 이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묻지 않는다. 


처음 독일회사에서 병가를 썼을 때, 구구절절 어디가 언제부터 아픈지 메일을 썼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의 병가 통보를 보니 "나 오늘 몸이 안 좋아. 병가 쓸게."라는 말 외에 아무 내용이 없었다. 따로 진단서가 있나 메일의 첨부파일란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이 문장 한 줄로 병가가 승인된다고? 아프지 않은 것도 실력이라며 다른 직원들 앞에서 혼을 내고, 수술하고 누워있는 사람한테 휴가 잘 쉬고 있냐는 소리를 했던 한국회사에서 온 내 시각으로는 TMI(Too Much Info)가 아니라 PMI(Please More Info)였다.




그렇다. 독일에선 병가의 이유 즉, 병명 및 자신의 상태를 회사에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상사는 설령 궁금할지라도 물을 수 없다. 개인의 신체상태는 개인정보이며 사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게 정신적 병이든 신체적 병이든 '본인이 판단하기에'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태면 병가가 허용된다. 


연속 3일까지는 의사의 진단서 없이 병가가 가능하며, 4일째부터는 의사의 진단서를 총무 혹은 매니저를 통해 인사과에 제출해야 한다. 주말도 셈에 들어가서 금요일부터 아팠다면 일요일이 3일째이니, 월요일까지 병가를 내려면 진단서를 내야 한다. 보통 감기와 같은 가벼운 증상은 3일 정도 쉬면 낫고, 독일 병원 시스템 상 바로 예약 잡기가 어렵다는 걸 누구나 알기에 일단 3일 정도 버텨보고 조치를 취하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또한 휴가 중 갑자기 몸이 아파 요양해야 한다면, 휴가를 취소하고 병가로 전환할 수 있다. 휴가는 '건강한 상태에서 업무에서 벗어나 휴식'하는 시간이지 아픈 몸을 요양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가로 전환된 날의 휴가는 세이브할 수 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은 이 부분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직원도, 승인하는 직장도 대단하다고. 




이쯤 되면 병가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실 것 같다. 여태 독일직장에서는 보지 못했지만 한국회사에 근무하던 외국인 직원들의 악용사례는 몇 차례 봤다. 의도적으로 병가를 최대로 늘리거나, 심지어는 병가 기간에 이직을 위한 인터뷰를 보는 직원도 있었다. 악용하면 안 되지만 서류가 완벽하다면 실제 악용인지 아닌지 구분할 길도 없으니 회사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이다. 


같은 맥락으로 이런 웃지 못할 짤도 등장했다. 



Bitte keine Fotos bin krankgeschrieben (사진 찍지 마세요 저 병가 썼어요)


웃자고 쓴 말이길 바라지만 실제로 병가를 악용하고 딴짓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생겨난 말일 거다. 얼마나 자주 쓰이면 이 문구를 넣은 티셔츠도 등장했다. 


어떤 이유라도 병가를 악용하는 건 본인에게 도움 되지 않을 행동이다. 딴짓하면 스스로 양심에 찔릴 것이고, 본인이 양심을 팔아먹은 탓에 동료 누군가는 과중한 업무량을 견뎌야 하니 이래저래 피해를 주는 행동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제목 사진출처: pixabay

본문 사진출처: fazamag.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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