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한 비주얼에 착한 맛, 정체가 뭐니?

포르투 미식

by 가을밤

포르투갈에 머무는 동안 꼭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미식투어. 위장의 크기와 소화 능력치가 지금의 딱 두 배였다면 각 잡고 오직 미식투어만하고 싶을 정도로 음식이 다채롭고 맛있었다.


그중에서도 상당히 별로인 비주얼과 어울리지 않게 입맛을 사로잡았던 게 있으니, 바로 프란세지냐이다.




Francesinha(프란세지냐)는 포르투에서 탄생한 포르투갈식 샌드위치인데 손으로 들고 먹지 않고 접시에 소스와 함께 담아 맨 위에 녹인 치즈를 올려 완성, 칼로 썰어 먹는다. 단독으로 먹어도 되고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 게 정석이다. 포르투에 가기 전 생각했던 게 있다. '프란세지냐는 딱 한 입, 맛만 보자.' 느끼한 걸 싫어하고 치즈를 잘 못 먹지만 안 먹고 오긴 아쉬우니, 남편이 시킬 때 입만 대볼 심산이었다.


포르투 현지에서 우리는 로컬 프란세지냐 전문점을 방문했다. 언제나 그렇듯 무정보 구글맵 맛집 뒤지기를 통해 찾아낸, 한국인 방문이 없거나 매우 적은 식당. 한국어 리뷰는 없으나 현지인 리뷰는 무려 4000개가 넘는 곳이었다.


프란세지냐 기본 (출처=직접촬영)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음식도 메뉴판 가장 첫 번째에 있는 기본메뉴가 그 집의 진짜 실력이라는 생각에 다른 건 볼 것도 없이 주문했다. 그리고 약 15분 뒤에 나온 프란세지냐는 특별할 것 없어 보였다. 식빵 두 장 사이에 고기를 껴넣은 것 같고, 소스의 비주얼은 마치 학창 시절 급식에 종종 나왔던 스파게티 소스 같았다.


프란세지냐를 반으로 가르니 겹겹이 쌓인 고기패티와 소시지, 그리고 토마토가 보였다. 내용물이 이토록 정직하고 정확하게 보일 줄이야. 맛도 80% 이상 상상이 되었다.


프란세지냐. (출처=직접촬영)



그리고 작게 조각내어 맛을 본 순간, 아뿔싸. 한 길 모르는 건 사람 속뿐만 아니라 음식도 가능하구나. 겉만 보고 맛을 지레짐작했던 2분 전이 후회되었다. 실제 프란세지냐의 맛은 상상하지 못했던 20%에 담겨있었다.


구운 돼지고기 스테이크는 담백하면서 토마토 아래 깔린 소시지의 풍미와 잘 어울렸다. 위에 올려진 멜팅 치즈는 치즈 특유의 향이 있어서 느끼할 뻔했으나 소스의 매운맛이 잘 잡아주었다. 달달한 시판 소스 맛이 날 거라고 예상했던 소스는 오히려 단맛은 거의 없고 매운맛이 났다. 정보를 찾아보니 맵기는 지역마다 조리사마다 다양하다고 하는 걸 보아 기본적으로 살짝 매운 소스인가 보다.


정신없이 프란세지냐의 맛에 빠져 한 입맛 먹겠다고 했던 내 접시는 어느새 비어가고 있었고, 그 사이에 식당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프란세지냐의 속 (출처=직접촬영)


'작은 프랑스 여성'이라는 뜻의 프란세지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프란세지냐의 기원은 프랑스를 방문한 포르투갈인이 그곳의 크로크무슈를 맛보고 감명받아 포르투갈로 돌아와 개발한 메뉴라고 한다.


모습과 맛은 원조와 달라도 엄연히 포르투갈의 국민음식으로 자리 잡은 프란세지냐는 이제 프랑스의 이름을 지워도 되는 영락없는 포르투갈 음식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중국음식'이라고 하면 현지와는 다른 한국식 짜장면과 탕수육을 떠올리듯 말이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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