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게 제일 중요해
요즘 나는 두 가지 음식에 미쳐있다. 바로 콩나물과 떡볶이다. 두 음식의 연결고리는 없다.
원래 그 음식을 좋아했냐 물으신다면, 글쎄. 있으면 먹었지만 일부러 그 음식을 먹으려고 어딜 찾아간 적은 없다. 내게 콩나물은 엄마가 해주시는 반찬, 떡볶이는 출출할 때 길에서 한 번씩 사 먹거나 시간 없을 때 끼니를 때우는 정도의 음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원래 못 먹게 하거나 없으면 더 생각나는 법이다. 한국에서는 쳐다도 안 보던 순대볶음이 작년 내내 먹고 싶던 1순위 음식이었다고 하면 믿으시려나? 독일생활이 연차로 벌써 두 자리가 넘어가는데 여전히 치즈도 안 좋아하고, 돌 같은 독일 빵은 많아야 한 달에 한 번 먹는 정도이며, 못 먹어서 안달인 한국음식이 있는 걸 보면 참 내 식성도 지독하게 안 바뀐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햄버거와 피자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치즈버거보다 된장국을, 피자보다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서양식을 먹느니 그냥 밥에 김 싸 먹는 편을 택했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남들 다 먹는 햄버거도 안 먹는다고 화를 내셨다.
모든 아시아식을 가리지 않고 먹었던 건 아니지만, 나는 단언컨대 100% 아시아 입맛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선 먹지 않았던 고수, 향신료, 코코넛밀크 베이스의 음식마저 독일에 살며 모두 섭렵했기 때문이다. 가끔 서양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는데 아시아식을 먹으면 위장이 돌아온다. 이런 사람이 해외에, 그것도 유럽에 살고 있다니 나도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어떤 음식에 꽂혀서 그것만 내내 먹을 때가 있다. 이번엔 콩나물과 떡볶이다. 독일 마트에서 우연히 병에 든 콩나물을 발견하고 식감과 맛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안 이후로 거의 Hamsterkauf(햄스터구매: 사재기)를 하고 있다. 열어서 간단히 무쳐놓기만 하면 우리한테 두 젓가락 감도 안 되지만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은 밥 먹는 시간을 행복하게 해 준다.
떡볶이는 아마도 떡의 쫄깃한 식감과 매콤 달달한 맛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 한인마트에서 발견한 내수용 분모자 떡볶이를 밤낮으로 먹으니 입에서 '행복해'라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이 정도로 떡볶이를 좋아했다고? 그건 아니다. 다른 떡종류를 먹기 어려우니 대체재가 300%의 만족감을 주는 것 같다.
해외 살면서 그렇게 한국음식만 찾다니, 혹시 나를 해외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인으로 보는 독자분이 계신다면 이건 정말 억울한 오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독일생활 초창기(1-3년 차), 나는 한국음식은 입에도 안 댈 정도로 독일식만 먹었다. 아침과 저녁은 차갑게, 점심은 따뜻하게. 하루 종일 질겅거리는 빵만 씹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먹는데서 오는 엄청난 행복감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내 일상마저 단조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이곳에서 외로움은 트리플로 늘어나고 행복감은 곱절로 줄어드니 우울감이 가시질 않았다.
나는 먹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사람이 괜히 먹던 대로 먹어야 하는 게 아니다. 태어나서 자란 곳의 음식은 지금의 나를 만든 근본적인 재료나 마찬가지며, 사람의 성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한국음식을 찾아다니고, 유튜브 보며 따라서 많이 해 먹었고, 지금도 해 먹고 있다. 독일에서 30년, 40년을 사신 분들도 정기적으로 김치 담그시고 나물 무쳐 드신다.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부모님이 독일에 오시면 꼭 한국식당을 모시고 가는 것도 그 이유다.
그래서 나는 지금 떡볶이와 콩나물에 미쳐있는 내가 좋다. 질릴 때까지 여러가지로 요리를 해 볼 작정이다.
제목 사진출처: pixabay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