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왔다, 그 계절이.
독일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겨울. 10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2월 말, 길게는 3월까지 지속되는 독일의 겨울은 정말 우울 그 자체다. 오전 내내 해가 뜨지 않고, 비가 오다가 4시 반이면 찬찬히 해가 지다가 6시면 칠흑처럼 깜깜해지는 독일의 겨울.
오늘 7시 반에 저녁을 먹고 차를 끌고 나갔는데 비는 쏟아지고, 앞은 안 보이고, 도로에 등이나 상점조차 없어서 어둠 속에 앞서가는 차의 후미등에 반사되어 어렴풋이 보이는 차선에 의지해서 아우토반을 달렸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리고 운전하면 금세 저세상 갈 듯한 느낌이었다. 이전에 운전이 서툴렀을 때, 딱 이런 날 차를 끌고 나갔다가 맞은편에 오는 차가 불빛으로 신호해줘서 겨우 차선을 잡고 갔던 게 기억난다. 운전자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그 차가 내 생명을 구해주었다고 생각한다.
10월 말이면 다시 윈터타임이 시작되어 한 시간이 당겨진다. 윈터타임 시기에 4시 반이면 해가 진다. 실제로는 윈터타임 때문에 더 일찍 밤이 오는 것처럼 느껴질 뿐, 한국으로 치면 5시 반에 해가 지는 거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랑 별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햇빛과 밤을 밝히는 네온사인과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없으니 피부로 느껴지는 일상은 한국과 180도 다르다. 모든 공기가 땅으로 내려앉은 느낌이다.
겨울 중 가장 힘든 달은 11월이다.
10월까지는 그나마 오전에 잠시 뜨는 해와 흙냄새 물씬 나는 가을 느낌으로 버티는데, 11월 초부터는 급격히 추워지고, 공휴일이나 특별한 행사도 없으며, 그렇다고 휴가기간도 아니고 연말 전이라 회사 일은 일대로 많고, 해를 못 쬐고 하루종일 어둠 속에서 움직여야 하니 몸의 에너지는 안 올라오는 기간이다. 11월은 정말 고용량 비타민D로 버티는 시간인 것 같다.
작년 11월은 난방으로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작년부터 치솟은 난방비로 인해 집 안 난방을 켤 엄두를 못 냈다. 집에서 다운점퍼와 수면양말을 신고, 책상 아래에 미니 난로를 설치했다. 그마저도 전기세 폭탄 맞을라 5분씩 켜고 끄기를 반복했다. 난방을 극도로 줄이니 장롱 뒤편에 곰팡이가 앉기 시작했다. 지은 지 10년이 넘은 집이었는데 (나름 신축이었다) 외벽 공사가 잘못됐는지 외부 습기가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와 온 벽면이 곰팡이로 도배가 되었고, 우리는 멀쩡히 서있던 장롱을 다 뜯어서 버려야 했다. 졸지에 장롱이 없어지고 방 한구석이 텅 비었으며 벽 전체 청소와 페인트칠을 다시 해야만 했다. 건물 문제라고 몇 번을 말해도 우리(세입자) 잘못이라는 집주인과 대화하기를 멈추고 페인트 시공 전문가분께 벽을 맡겼다. 너무 정신이 없고 추워서 어떻게 겨울을 맞이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현재는 그 집에 살지 않고, 지역도 옮겨와서 올해 겨울은 작년보다는 나을 것 같다. 사람은 꼭 접촉하지 않아도 주변에 사람이 필요하다. 즉, 나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인기척 만으로도 은근히 위로가 된다. 지금 사는 곳은 아파트 단지 안에 가구수도 꽤 많고 동네가 큼지막해서 제법 사람 사는 느낌이 난다. 가까운 곳에 대화가 잘 통하는 이웃분도 있으니 종종 왕래하며 독일의 건조한 겨울을 이겨내보고 싶다.
어쨌든 이 또한 다 지나갈 테니까.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