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나도 결혼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으니 '요즘'에 속하지만 최근 방송프로그램이나 유튜브 강의 등에서 한국의 결혼 트렌드를 보면 반반결혼이니, MBTI부터 묻는다느니, 조건 다 따져서 손해 볼 게 없는 게 확인되면 사귄다느니 하는 말들이 많다.
하물며 치킨도 따져보면 후라이드나 양념 중 한쪽이 단 10그람이라도 많을 텐데, 열 길 물속보다 어렵다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결혼을 어찌 반반으로 할까. 이 현상을 보며 문득 생각난 사람이 있었다. 얼굴과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나므로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떠올랐다. 그 사건은 아마 시간이 가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때는 대학교 2학년, 아는 선배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장소도 기억난다. 당시 핫한 붐이 불었던 '매드 포 갈릭'. 거기 피자랑 파스타가 정말 맛있었는데 요즘은 사라져서 아쉽다. 아무튼 주선자 없이 먼저 도착하여 남자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분이 들어오셨고, 내 앞에 앉으니 아 이분이구나 싶었다. 소개팅에 정장차림이라니 어디 회사 면접이라도 보고 왔나 싶었다. 그분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서 나에게 내밀었다. 투명홀더에 담긴 본인의 이력서였다.
순간 내 눈은 파일과 그분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명 나한테 보라고 준 것일 테니 뭔가 반응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력서에는 생일, 주소, 학력 및 본인의 수상이력까지 적혀있었다.
이력서를 주고 반짝거리는 그분의 눈동자를 보니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았다.
"아, 열심히 사셨네요. 상도 많이 타셨고요."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걸 대체 왜 보여주시는 거죠? 면접도 아니고.."
그러자 그분은 내 반응이 의외라는듯 당황하며 '자기에 대해 알려주려고' 준비했다고 했다. 백 마디 말로 설명하느니 종이 한 페이지에 적는 게 효율적인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1분 뒤 바로 돌려드렸다. 솔직히 1분 동안에도 그냥 빈 공란만 뚫어지게 본 것 같다.
"나는 면접관도 아니고 당신을 평가할 자격도 없으니 서류에 쓰여있는 걸 보여주고 싶다면 직접, 그리고 하나씩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동 어느 아파트에 사느니 하는 개인 신상은 필요치 않다고 했다. 그 뒤 우리는 편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이력서를 건넨 그분의 방식이 영 불편하게 느껴졌다. 마음과 가치관이 맞는 사람인지 판단하는데 이력서에 쓰여있는 글자들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왠지 겉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고 오히려 나도 표면적인 것부터 꺼내보여야 할 것 같아서 다음 약속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렇게 한 번 밥 먹은 것으로 소개팅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분의 방식이 너무 시대를 앞서가서 오히려 요즘이었다면 트렌드에 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적어도 '외적 스펙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기혼인 분들은 아실 거다.
사는 곳, 학교, 수상경력보다 더 중요한 게 있고 바로 그게 어쩌면 결혼 후의 모습을 결정하는 전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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