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가을 어느 날
9, 10, 11월 독일도 한국과 같은 가을이다.
가을이 다 그러하겠지만 독일의 가을은 유독 짧고 아쉽다. 오후 8시 반까지 해가 떠있는 여름 끝자락에 흙냄새가 올라오고 바람이 선선해지면 가을이 오는 신호다. 참 이대로만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흙내음을 미처 다 즐기기도 전인 10월 중순부터 슬슬 다운점퍼를 꺼내야 한다. 이미 내 옷장은 두터운 코트와 점퍼로 가득하다.
해를 볼 수 없는 회색의 하늘이 오전 내내 지속되다가 오후 4시 반이면 어두워져 버리는 게 독일의 가을이다. 참으로 사색하는 계절 그 자체다. 독일의 날씨를 보면 어찌 이런 곳에서 철학자가 안 나오고 배길까 싶을 정도다. 모든 이가 인생과 인간에 대해 논할 수 있을 것 만 같다.
10월 29일, 정확히는 10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은 좀머짜이트(서머타임)가 빈터짜이트(윈터타임)로 변경되는 날이다. 꽤 많이 잔 것 같은데 알람이 울리지 않아서 시계를 보니, 어제까지 8시 반이었던 시계가 7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습관에 익숙해진 사람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해가 유독 빨리 지는 나라들을 보면 대부분 윈터타임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시간이 한 시간 앞당겨졌으니, 해가 더 빨리 지는 것 같이 보이는 일종의 착각을 일으킨다. 실제로는 한국이나 여기나 5시 반이면 해가 지는 셈인데.
독일의 가을이 유독 사색을 일으키는 이유는 빛이 적고,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솨 쏟아지고 깨끗이 개면 좋으련만. 하루종일 소리 없이 오고 가벼운 빗방울은 바람따라 방향을 바꾸니, 우산을 쓰기에도 애매하다. 오히려 우산을 들고다니는 게 어색하다.
비가와도 주말이면 나가지 않아도 되니 운이 좋은 날이다. 이런 날엔 집에서 따뜻한 차를 만들어 이불 속에 들어가 책을 읽는 게 가장 큰 행복이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