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더 이상 기피하지 않는 항공사

by 가을밤

여행 경험이 쌓이면 시기 또는 운에 따라 기피하거나 선호하는 항공사가 생긴다.


나에게는 루프트한자가 이전에는 선호했으나 근 몇 년 전부터 기피하는 항공사가 되었으며, 저비용 항공사 이지젯은 기피했으나 선호하는 항공사가 되었고, 대한항공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선호하는 항공사이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항공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고 싶은 최악의 항공사였으나 이번 기회로 선호하게 될 항공사가 되었다. 말 그대로 선호도가 180도 바뀌어 버린 항공사, '에어차이나'이다.




나는 팬데믹 이전 중국에 방문할 때 줄곧 에어차이나를 이용해왔다. 그리고 매번 후회했다. 매번 '이번은 좀 나아졌겠지'라며 희망을 가졌지만 좌석이 매우 좁거나, 청결상태가 나쁘거나, 너무 시끄럽고 규칙을 안 지키는 승객이 있거나 - 무엇이든 비행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가 꼭 하나씩 있어서 오랜 기간 기피대상 1위였다.


그런데 이번 중국 방문에서 또다시 울며 겨자 먹기로 에어차이나를 타게 된 것이다.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일단 가격이 저렴하고 비행 시간대도 매우 다양해서 도저히 가성비로 이길 항공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벼르고 있던 유료 비상구열까지 이미 매진이었다. 아뿔싸. 호랑이굴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10시간만 눈 딱 감고 참자'.


비행 당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에어차이나의 체크인 창구 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다행히 새치기하는 사람 없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던 줄이 금방 빠져서 족히 1시간은 걸릴 것 같던 체크인이 20분 만에 끝났다. 위치도 택스프리 창구 바로 옆이라 여행객들도 손쉽게 세금환급 및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비행 전 느낌이 의도치 않게 꽤 좋았다.

(왼) 프랑크푸르트공항 에어차이나 창구 / (오) 이코노미 좌석 (출처=직접촬영)




탑승 역시 질서 정연하게 이뤄졌다. 비행기가 크고 만석이었던지라 (춘절시기 모든 비행기마다 만석이다) 사람도 정말 많았지만 무리 없이 예약한 자리에 착석할 수 있었다.


탑승 전 한참을 걱정한 좌석상태는 매우 깨끗했고, 일반 이코노미석 좌석 앞 공간도 대한항공 이코노미석만큼 넓었다. 에어차이나가 원래 이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전의 악몽 같던 기억이 점차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스크린도 깨끗하고 콘텐츠가 전반적으로 매우 풍부했으며(안타깝게도 한국영화는 없다. 한국어 지원되는 영화도 단 1개뿐), 흔한 스크린 터치 이슈도 없었다.


비행기는 안내된 정시에 이륙했다. 독일 루프트한자와 DB도 하지 못한 것을 에어차이나가 해내고 있었다. 음료는 약 4번, 식사는 2번 서비스되었고 물은 수시로 갖다 주었다. 식사도 아시아식과 양식을 선택할 수 있어서 입에 꽤 잘 맞았다.


중국에 간다고 하면 가장 걱정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인데, 화장실이 정말 상상도 못 하게 더러운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항간에 중국화장실에 문이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극히 시골을 제외하곤 도시에서 문 없는 화장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청결은 정말 복불복 그날의 운에 맡겨야 한다. 이는 비행기라고 예외는 아닌데, 에어차이나 비행기의 화장실은 비행시간 내내 깨끗했다. 알고 보니 승무원들이 거의 1-2시간 간격으로 청소를 하고 있었으며 특별히 더럽게 사용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비행 중 안전지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움직이거나 시끄럽게 하는 승객도 없었다. 고작 팬데믹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 거의 180도로 변한 비행경험에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단지 승무원들만 잘해서는 한계가 있을 텐데 중국인 승객들의 탑승태도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느꼈다 (외국인 승객은 나 포함 10명도 안되었다).



맛있게 먹은 연어덮밥. (사진=직접촬영)


물론 내가 운 좋게 좋은 기체와 승객들을 만나서 그럴 수도 있지만, 수 백 명이 랜덤으로 만나는 비행기에서 이 정도로 경험이 다를 수 있는 건 비단 한 두 가지의 개선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인지 아닌지 몰라도 에어차이나가 이 갈고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며, 중국인들도 해외경험이 늘어서인지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 같았다.


가격 면에서는 에어차이나가 원래부터 경쟁력이 있었으니, 다 식은 차가운 빵 주고, 수하물 잃어버리고, 연착 밥 먹듯 하고, 보상조차 12주가 걸리는 루프트 한자와 같은 항공사는 이제 정말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분수 구경은 이곳으로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