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上海).
벌써 세 번째, 아니 네 번째 방문일까, 어쨌든 상해는 나에게 익숙한 곳이다. 과거에 여행으로 오기도 했고 남편의 어릴 적 추억이 묻어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족이 된 사람의 인생에서 내가 없던 시기를 안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도시 규모가 워낙 큰지라 상해에 올 때마다 며칠을 묵어도 참 새롭고 봐도 봐도 끝이 없는데, 아마 이번 방문은 더 특별할 것 같다. 남편의 모교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내가 졸업한 한국 대학도 나름 규모가 있는 편인데 남편 모교에 견주면 귀여운 마을 수준이었다. 남편의 모교는 중국대학 중 대지규모 최대, 학생 수 약 43000명으로 독일 소도시 혹은 스위스 시골마을 8개 정도를 합쳐놓은 정도의 크기이다. 말로는 쉽사리 짐작이 안 갔는데 캠퍼스에 들어서자마자 엄습하는 규모에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은 여기서 하는구나’ 싶었다.
캠퍼스를 거닐며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건물은 5-6층짜리 멋없는 기숙사들이었다. 직사각형으로 끝도 없이 지어져 있는 기숙사는 80채가 넘었다. 기숙사 방 하나당 4명이 배정되니, 못해도 건물 한채 당 200명 이상의 학생이 생활하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전체 학생 수만 족히 2만 명이 넘었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을 앞둔 시기인지라 기숙사에 머무는 학생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굳게 닫힌 기숙사 입구 주변 여기저기 어설프게 널린 빨래며 주인을 기다리는 택배들이 남편과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했다. 막 성인이 되어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무엇이든 다 서툴고 어설펐지만,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며 주문을 외우던 시기. 한 가정을 이룬 지금 돌아보니 그저 귀엽기만 한 시절이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추억을 나누며 발걸음을 옮기니 학생식당이 나왔다.
대학생활의 묘미 중 하나가 바로 학식 먹기인데 아쉽게도 춘절방학으로 인해 식사는 할 수 없었다. 대신 학생회로 보이는 학생들이 무언가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춘절에 집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과 관련 손님들을 모시고 춘절 행사를 하는 것 같았다. '중국식당'하면 떠오르는 둥근 테이블 의자마다 빨간색 선물상자와 용캐릭터 인형이 놓여 있었다. 언뜻 본 학식 가격은 우리 돈 고작 1000-3000원 수준으로, 남편이 다니던 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없다고 한다. 그래, 학식은 싸야 제맛이지.
호수를 끼고 있는 캠퍼스는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분명 입구는 있는데 출구는 안 보이는 규모. 차로 달려도 캠퍼스를 가로지르려면 꼬박 30분을 간다고 한다. 바쁜 학기 중 학생들은 거의 자전거, 스쿠터, 교내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중국 내 그리고 상해에서도 손꼽는 대학으로 이곳 교통대와 복단대(푸단대)가 있는데, 복단대는 문과강점, 교통대는 이공계 강점 대학이다. 다음 목적지로는 남편이 다니던 공대건물을 가보기로 했다.
캠퍼스를 걸은 지 약 1시간 반이 지났을 때 첫 공대 건물이 나왔다. 전자전기공학과 전원(電院). 아래 왼쪽 사진처럼 생긴 전전학과 건물만 총 세 채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돌다 찾은 남편의 학과건물. 4년 간 이곳에서 학업을 갈고닦은 그 많은 학생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미래를 꿈꿨을지, 그들의 땀과 발자취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참고로 남편의 동문들은 현재 중국 대기업을 비롯해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근무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꼬박 2시간 반이 넘는 교내 도보투어를 마치고 학교를 빠져나오니 만보기에 찍힌 수가 20000이 넘었다. 학교가 아니라 소도시 투어를 다녀온 것 같았다. 이렇게 남편의 추억을 따라간 캠퍼스 방문이 끝났다.
장쩌민 전 주석의 모교이기도 한 교통대학의 100년 역사를 담고 있는 모체는 상해 시내 프랑스 조계지 우캉루(무강로: 武康路) 근처에 있다. 이곳이 최초 캠퍼스 부지로, 규모는 작지만 유럽식으로 지어진 도서관과 연구동을 볼 수 있으며 지금까지도 사용 중이다. 남편도 이곳과 대형 캠퍼스에서 모두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시내 캠퍼스는 '상해의 유럽'이라 불리는 프랑스 조계지에 속해있으며 상해시내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이므로 상해여행을 간다면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