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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Feb 15. 2024

분명 차(茶)를 마신다고 했는데

여느 대도시들이 그러하듯 상해에서도 각국 음식을 비롯하여 '중국 각 지방'의 음식을 손쉽게 맛볼 수 있다.

땅덩어리가 그토록 넓은데, 어찌 한 나라라는 이유로 문화가 같을 수 있겠는가. 중국은 지역별, 민족별로 사람들의 생김새부터 생활습관 그리고 음식까지 각양각색이라,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지구 같다.


상해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다양한 식사를 즐기고 있는데 여태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식사는 '광동식 자오차(早茶)'였다. 자오차는 직역하면 '아침에 마시는 차'이지만, 실제로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매우 다양한 음식을 시켜 차와 함께 먹는 광동지역의 아침식사를 말한다. 중국 타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동지역의 특징적인 문화이다.


중국남부의 광동지역 (광둥성).  선전, 홍콩, 마카오가 속한 성도다. (출처=구글맵)




이러한 자오차는 이제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여 중국 곳곳에서 '자오차'를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이날 점심 자오차 전문식당을 방문했다. 아침식사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점심에 자오차를 먹으러 온 사람들로 식당은 이미 만석이었다.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식당을 찾은 손님 중 젊은 커플이나 친구단위는 거의 없고 가족(부부, 아이가 있는 가족, 손자와 함께 온 조부모 등)이 주를 이루고 있던 점이다. 우리 역시 시부모님과 함께 방문했으므로 가족손님에 속했다.


점심에 자오차를 먹으러 온 사람들. 대기줄이 있을 정도였으며 대부분 가족단위였다. (출처=직접촬영)


자오차의 메뉴는 '간단한 아침식사'라고 부르기 어색할 정도로 재료와 종류가 화려하다. 가벼운 딤섬에서부터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면류, 죽류, 그리고 디저트까지 제대로 시키면 웬만한 저녁식사보다 푸짐한 식사가 된다. 아래 사진 메뉴판은 일부이며 전체 메뉴는 QR코드를 찍어 앱으로 바로 주문했는데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메뉴가 끝이 없었다.


(왼) 자오찬 추천메뉴 / (오) 앱으로 주문하는 모습. (출처=직접촬영)




독일서 두리안이 그리웠다던 남편은 첫 메뉴로 두리안 디저트를 시켰다. 한국인인 나의 시선에선 식사 전 디저트부터 나오는 게 당황스러웠지만, 자오찬은 다양한 음식을 상에 올려놓고 천천히 즐기는 것이니 음식이 나오는 순서는 사실 별 상관이 없다.


(왼) 두리안 디저트 / (오) 우유+팥 푸딩. 정말 부드러웠다. (출처=직접촬영)


곧이어 자오찬의 꽃, 딤섬이 나왔다. 새우와 고기를 넣은 딤섬 그리고 달게 양념한 돼지고기를 넣은 바오즈(호빵과 비슷한 만두) 등 소량이었지만 맛을 보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자오찬은 본래 차와 딤섬으로 출발했다. 차에 곁들일 간단한 간식으로 내어놓은 게 딤섬이었으니, 지금의 현대식 자오찬에서 딤섬이 빠진 건 앙꼬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자오차를 먹는다면 딤섬을 꼭 주문하자.

 

사진 속 아래 - 새우딤섬 시우마이(烧卖)가 담백하고 맛있었다. (출처=직접촬영)




하지만 나의 원픽은 따로 있었으니, '홍미 추이피 시엔시아 창펀(홍미취피선하장분:红米脆皮鲜虾肠粉)'이라 불리는 빨간색 롤이었다. 중국 요리의 이름은 어렵게 들려도 한자를 뜯어보면 재료부터 요리법까지 제법 상세히 알 수 있다. 홍미(红米)는 붉은 쌀, 추이피(脆皮)는 바삭한 껍질, 시엔시아(鲜虾)는 신선한 새우 그리고 창펀(肠粉)은 전분으로 만든 순대모양의 음식이다.


이름 그대로 재현한 듯, 롤 안에는 반죽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새우가 꽉 차있고 겉은 쫄깃한 전분옷이 감싸고 있었다. 홍미의 향이 강해 첫맛은 독특하지만 입안에 울리는 바삭한 소리와 통통한 새우맛이 일품이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눈 깜짝할 사이 접시가 비워져 있었다.  


눈도 입도 즐거웠던 요리. (출처=직접촬영)


광동음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단짠단짠'이다. 맵거나 얼큰한 맛은 찾아보기 어렵고 약간 달거나 아주 달거나, 혹은 짜다. 한국식 매운맛에서부터 중국식 알싸한 마라까지 매운맛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와 남편에게 아쉽지만 광동식은 '어쩌다 종종 즐기는 미식'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비록 음식 맛 때문에 자주 즐기진 않더라도 가까운 사람들과 모여 따뜻한 담소와 함께 다양한 진미(珍味)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광동식을 경험할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왼) 팥수프. 죽이라고 하기엔 묽고 음료라고 하기엔 되직하다. / (오) 돼지고기 볶음요리 (출처=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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