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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Apr 03. 2024

1포인트에 목숨걸기

한국에 살 땐 뭐 하나를 구매하더라도 참 챙겨야 할 게 많았다.

XX포인트, XX할인, XX할부행사, 신규이벤트 등 받을 수 있는 할인과 모을 수 있는 포인트가 많기 때문이다.어차피 그게 그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행사 따위 신경 안 쓰고 물건을 샀다가 나중에 더 싸게 살 수 있던 루트를 알면 은근히 짜증 나기도 했다.


독일에 온 이후로 이러한 부분이 완전히 사라졌다.

할인행사도 거의 없고, 있어도 인터넷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행사기간이 굉장히 짧으며, 모을 수 있는 포인트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면대면으로 흥정할 수 있는 가격조차도 할인폭이 상당히 적다(없는 건 아닌데 거의 안 해주려고 한다). 그래서 독일에선 웬만하면 모든 게 정찰제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뭐든 장단점이 있기에,

처음에는 이 부분이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물건하나 사는데 할인쿠폰이나 이벤트 찾는다고 신경 안 써도 되니 시간 절약되고 에너지를 아끼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쇼핑경력이 길어질수록, 독일에서 비싸게 주고 사는 물건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같은 유럽 물건에, 행사를 적용하지 않아도 한국이 저렴한 물건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같은 정찰제면 한국은 포인트라도 모이는데 독일에선 돈은 돈대로 쓰고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어디까지나 내 경험에서 말하는 것이니 반대의견이신 분들은 그 말도 맞다).


'돈 쓰는 재미'가 없으니 돈을 잘 안 쓰게 해주는 독일에 고맙다고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그러나 반대로 쓰는 것 대비 혜택이 없으니, 사막에 모래 추가하듯 주는 눈곱만큼의 혜택에 목숨을 걸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독일에 거주하면 열에 아홉은 갖고 있는 카드 '페이백'.

dm, rewe, aral 등 여러 생필품 기업들이 참여하는 포인트 시스템이다. 매장에 따라 1-3유로 당 1포인트를 주며, 1포인트는 실제 1센트로 현금화가 가능하다. 모인 포인트는 페이백 홈페이지에서 쇼핑을 하거나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이 페이백을 13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간의 시스템 개선을 제외하고 내 카드 번호나 전체적인 방식은 변한 게 없다. 지독하게 안 변하는 독일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 아무튼 포인트 시스템은 페이백이 거의 유일하다 보니 쇼핑할 때마다 이 페이백에 목숨 거는 궁상맞음이 생겨났다.


이미 계산이 끝나면 페이백 포인트를 추후적립할 수 없기에, 점원이 가격을 말하면 일단 페이백 카드부터 내민다. 앱에서 쿠폰을 미리 활성화시켜놓는 것은 당연하다. 영수증에 딸려 나오는 추가적립 쿠폰조차도 소중하다. 독일 땅에서 가능한 모든 할인은 다 받아내고 말리라.




그리고 최근 Amex payback 카드를 추가했다.

아멕스 페이백은 페이백 가맹점이 아닌 곳에서도 포인트를 모아주기에 추가 포인트 적립에 제격이다. 어차피 쿠폰도 이벤트도 적은 마당에, 가뭄에 콩 나는 모양새지만 단 1포인트라도 더 모아야 하지 않은가.


아멕스 페이백카드 (출처=직접촬영)


독일 살며 누누이 하는 말이 있다.


독일인들이 검소해서 불을 안 켜는 게 아니라 전기세가 비싸기 때문이며,

그들이 태생적으로 추위에 강해서 난방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난방비가 비싸기 때문이며,

경제관념이 남달리 뚜렷한 게 아니라 다른 혜택이 없기 때문에 포인트라도 모으려고 하는 것이다.


모두 이 땅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진 습관일 뿐이다.


독일에 살고있는 혹은 살 계획이 있는 분들이여, 페이백과 종이쿠폰을 모으자.


p.s. 우편함 뒤져서 쿠폰 훔쳐가는 도둑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실제 겪음).


제목 사진출처: co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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