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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Apr 25. 2024

일 년 중 2주만 예뻐요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동생이 대뜸 나를 보며, 


"누나는 나이 들수록 점점 더 옷을 잘 입는 것 같아."라고 한다. 


MZ를 대표하는 나이대인 20대 중반 동생의 짧고 굵은 외모 평가. 나는 동생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건 내가 독일에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나의 대답,


"독일서 못한 거 2주 동안 여기서 몰아서 하는 중이야."




독일에선 옷을 잘 입는 날이 없다. 

정확히 말해 예쁘게 입어야 할 동기가 없다. 그나마 옷에 신경 써야 할 때는 회사 파티나 지인의 결혼식 같은 1년에 하루이틀도 안 되는 날이고, 나머지 364일은 말 그대로 '그냥 편하게 입고 다니는' 날의 연속이다. 


내가 무엇을 입든, 한겨울에 나시를 입어도 한여름에 털코트를 입어도 신경 쓰는 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날 좋은 날 노상 카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외모과 착장을 평가하는 독일인들이 많지만 그들의 대화 역시 지나가는 가십거리일 뿐, 진심으로 상대방의 착장을 걱정하거나 궁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신분(아시아인 외국인)으로서 후줄근한 옷을 대충 걸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정말로 너덜너덜한 옷가지를 걸치고 다니면 무시당하고 얕보이기 십상이다. 사람 사는 데라면 어디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다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추리닝 입고 명품관 갔다가 무시당한 사례가 있지 않은가. 


특히 관청이나 은행, 직장처럼 상대방과 면대면 대화를 하고 이미지 어필이 중요한 자리라면 단정과 깔끔을 잊지 말자. 서양권에 사는 아시아인은 소수집단이기에 아무 짓도 안 하고 거리만 걸어 다녀도 튄다. 그런데 옷마저 대충 입고 다니면 더 튄다 (자국에서 못살아서 이주한 걸로 오해하거나 동정한다). 해외에서 현지인들에 섞여 살다 보면 24시간 은은하게 깔려있는 긴장이 있는데, 옷이라도 잘 입으면 미약하게나마 긴장과 무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힘주어 꾸밀 필요는 없다. 

만약 한국에서처럼 '누가 봐도 준비된' 차림새로 간다면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특별한 일 있냐고 물을 것이다. (한국에서 기본적으로 꾸미는 수준이 여기서는 힘 잔뜩 준 걸로 보인다).


따라서 독일에서는 꾸며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지우되, '존중받기 위해' 단정하고 깔끔히 입는 것이 좋다.

 


제목 사진출처: co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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