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동네로 이사 와서 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헬스장에 등록했다.
독일은 한국처럼 다양한 운동을 한 건물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센터가 흔치 않다. 그래서 종목별로 학원을 다니지 않는 이상 헬스장에 등록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
스튜디오가 깨끗하고 시설도 신식이라 몇 개월을 즐겁게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식수를 받으러 음수대로 가는 길에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操你妈 chao ni ma".
이어서 웃음소리가 났다. 똑똑한 발음과 비웃음까지, 방금 내가 뭘 들었나 싶어 뒤를 돌아본 순간 그들은 연실 낄낄 거리며 벽 뒤로 사라졌다.
중국어를 모르는 분들도 저 문장이 심한 욕이라는 것쯤은 안다. 영어로는 F로 시작하는 그 욕설, 거기에 가족을 대입한 심한 욕이라고 보면 된다. 이름도, 얼굴도, 국적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다짜고짜 욕을 듣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욕한 사람이 미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상대가 미치는 꼴을 보고 싶거나.
내 경우는 후자였다(사실 전자일지도 모른다).
스쳐간 뒷모습으로 예상컨대 15-20세 사이의 아랍계(외모상) 남학생 둘이었다.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몰라도 자신들의 중국어 욕이 진짜 먹히는지 아시아인에게 테스트해 봤고, 내가 실제로 뒤돌아보자 재밌다고 생각한 것이다. 얼굴을 박제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아주 잘 안다. 이러한 말 같지도 않은 어린애들의 시비나 차별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하지만 상대가 미성숙한 아이라고 해서 극심한 욕을 참아줄 이유도, 그럴만한 너그러움 따위도 없다. 게다가 운동하며 스트레스 풀려고 오는 헬스장에서까지 언제 어디서 들릴지 모르는 욕으로 긴장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한 긴장은 길거리와 대중교통에서 겪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정식으로 헬스장 본사에 클레임을 넣었다. 불쾌했던 경험을 적고 그런 회원을 받은 헬스장에 유감을 표시하며, 다음에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냥 경찰 불러서 처리하겠다고 적었다. 한국이었으면 어디 공개 게시판에 올렸을지 모르나 독일은 그런 루트가 적어서, 본사 클레임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상식적인 조치였다.
약 3주 뒤, 헬스장 지점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정중하게 내가 겪은 상황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고 다음에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 회원을 즉시 영구퇴출 시킬 것이라고 했다. 물론,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단순히 주의를 주겠다는 말이 아닌, 그런 회원은 받아서는 안되니 퇴출시키겠다는 말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규모 있는 전국체인이라 단순히 회원 늘리기에만 급급하지 않고 브랜드 이미지에도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이유 없이 욕을 듣고, 다시 얼굴도 모르는 직원에게 사과를 듣는 일.
앞으로도,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제목 사진출처: Copilot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