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 둘 다, 면허 따고 강산이 변할 만큼 운전 경력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우리 과실로 인해 사고 났던 적은 없으니 나름 나쁘지 않은 운전을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독일은 대체적으로 한국보다 운전하기 수월한 편이다. 운전학원(면허 취득과정)이 고가에 시험 자체도 어렵고 양보에 자존심 따위를 거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위험 천만할 정도로 위험하고 기분 나쁜 상황을 겪고 나니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독일 운전자들 매너 있고 양보한다는 말 취소. 일반화하고 싶지 않지만 하게 만드는 상황에 지금도 손발이 떨린다.
동네를 돌아 고속도로로 향하는 국도,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좁아지는 구간이 있다.
우리는 1차선에 있었다. 곧이어 2차선으로 가야 했는데 옆 차(흰 차)도, 그 뒤에 오는 차도 바짝 따라붙어 도저히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조금 더 속도를 내어 옆 차(흰 차)의 앞으로 들어갔다. 맞은편 차도 없었고 중앙선 침범도 안 했고 추월 가능 차선이었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차(흰 차)가 자기 앞으로 들어오니 짜증이 났나 보다. 곧장 우리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렇게 3분 정도 주행하여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구간에서 속도를 80km 이상으로 높이기 시작하는 순간, 흰 차는 우리 앞을 추월하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서 급정거해버렸다. 아우토반 입구에서 말이다.
우리 차는 '앞차와 너무 가깝다'며 경보음을 울렸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앞차를 박았을 상황이었다. 멈춘 후 앞차와의 거리가 아마 10cm도 안 됐을 것이다.
고속도로 진입 구간에서 급작스런 추월과 급정거, 명백한 보복운전이었다.
그 차의 운전자는 멈춰서 백미러로 우리를 힐끔 보았다. 제발 빨리 받아달라는 눈치였다. 그래야 우리한테 100% 과실 뒤집어 씌우고, 내친김에 남의 돈으로 차를 싹 손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정말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보복이었다. (심지어 연속으로 두 번이나 그랬다).
교통법규를 어긴 것도 아니고, 차선이 줄어드는 구간에서 옆차선으로 간 게 문제란 말인가? 그게 하필 본인 앞이라서 기분 나빴다는 표시를 이렇게 위험 천만하게 하는 상대방의 수준은 안 봐도 알 법했다.
큰 사고가 날 뻔했다는 생각에 손발이 차가워지고 온몸이 떨렸다. 작년 아우토반 4중 추돌트라우마가 떠올랐다. 그때는 진짜 사고였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그랬다는 게 더욱 괘씸하고 화가 났다.
끝끝내 우리가 자기 차를 받지 않자, 그 차는 마치 자기의 잘못을 시인이라도 하듯 냅다 속도를 올리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무자비 칼치기를 하며 도망쳤다. 나는 그 차의 번호판을 증거로 남기고 경찰에 곧바로 신고했다.
독일은 여전히 블랙박스가 대중화되지 않았는데, 지인들이 겪은 칼치기나 노매너 운전 사례를 들을 때면 이런 점을 노리는 보복운전자들이 종종 있는 것 같다.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본인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복하는 인간들은 정말이지 인간이라 불릴 자격도 없다.
제목,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