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다리에 원인 불명의 통증이 찾아왔다.
생전 겪어 본 적도, 아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부위에 급성 통증이 몰려와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부위는 허벅지와 골반이 만나는 접점 어딘가, 다리 안쪽 근육 문제가 분명했다. 찾아보니 '단내전근'이라는 근육인 것 같다. 보통 이런 통증은 하루 푹 쉬어주면 낫기 마련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다음날 아침 나는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몸을 일으켜 내려오려면 허리와 엉덩이 쪽에 힘이 들어가는데 이 동작을 할 때 다리근육에도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바지를 갈아입고 양말을 신는 건 그 이상의 레벨이었다. 다리를 조금 들어 올리자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악소리가 새어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신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아무렇지 않은 움직임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근육이 관여하고 있던 걸까. 새삼 인체의 신비를 느끼는 동시에, 이 작은 부위 하나 고장 났다고 양말도 못 신게 설계된 몸뚱이가 너무나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다.
통증은 지속되었고, 마치 한쪽 다리에만 중력이 두 배 가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난히 걸음이 빠르고 바지런하게 움직이는 편인데 종종걸음으로 짧은 거리도 한참을 움직여 걸어야 했다. 행동이 느려지니 그저 움직이기만 했는데도 시간이 십 수분 지나 있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의 큰 인내심도 함께 필요하구나.
밤새 인터넷 뒤지는 것보다 의사 한 번 만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다음날 정형외과 오픈런을 했다. 독일 살면서 병원 오픈런 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안과, 내과 그리고 정형외과. 그중에서도 매일 어르신들이 몰리는 정형외과는 오픈런을 잘 안 받아주는데 내 꼴이 워낙 딱해 보였는지 전화조차 안 하고 갔는데 대기 30분 만에 담당의를 만날 수 있었다.
증상을 살펴보던 선생님은 근육손상 혹은 파열로 보인다며, "축구선수들이 흔히 겪는 부상"이라고 했다.
뭐, 분데스리가 직관한 적은 있습니다만 축구의 ㅊ자를 흉내 낸 적도 없는데요..?
다른 설명을 기대했던 나는 선생님의 미소 이외에 다른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본래 의사의 역할은 '증상을 치료'하는 거지, 원인을 규명해주진 않는다.
어차피 이미 일어난 일이고 환자의 생활을 24시간 들여다보는 게 아니므로 콕 집어 병의 원인을 찾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원인에 대한 얘기는 잘라먹고 회복에 집중하자며 약을 처방을 해주었다. 이번에도 독일병원들의 단골처방, 진통제다. 그나마 흔해빠진 이부프로펜 계열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독일병원들은 이처럼 지독할 정도로 보수적인 치료방식을 고집하는 곳들이 많다.
환자가 아파서 거동이 힘든 상황에도 어쨌든 진통제부터 먹고 일단 지켜보자는 의사. 답답하지만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약이 듣지 않으면 MRI로 넘어가야 하는데, 방사선과 예약과 정형외과 예약에 최소 3개월이 소요될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끔찍하다. 그저 진통제가 제 역할을 잘해주어 자가회복하길 바랄 뿐이다. 몸 건강한 게 최고의 자산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경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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