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권에서 생활하는 아시아분들, 특히 중국어권 출신분들은 마치 서양에서 생활하려면 기본이라는 듯 영어이름을 하나씩 갖고 있다.
"내 이름은 미미야."
"나는 토마스라고 해."
마치 본명은 집에서 가족들끼리 부르거나 여권 표기용이고, 영어 이름은 대외적 이름이라는 듯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영어이름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묻는다.
"영어이름 말고, 진짜 니 이름이 뭔데?"
그러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말한다.
"본명은 어려워. (예를 들어) 장웨이샨이야".
맞다. 그들의 이름은 같은 아시아권이라도 처음 듣는 사람이 발음하기 결코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려우면 배우면 된다. 어려운 외국어도 배우는데 이름하나 못 배울까? 그래서 나는 내 발음이 맞는지 재차 물어보고 여러 차례 발음을 교정한다. 오직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기 위해서'다. 내가 말을 거는 사람은 장웨이샨이지, 미미가 아니니까.
이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나를 나타내는 고유명사다. 책상, 침대 따위의 일반명사가 아니며 평생 내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타인에게 듣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단어다. 한국분들 중에서도 이름에 받침이 2개 이상인 분들이 외국인이 발음하기 쉽도록 굳이 예쁘고 멋진 본명을 두고 진부한 영어이름을 짓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내 시각으론 단지 '상대방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고유한 이름을 버리고 흔해빠진 영어 이름을 붙이는 게 너무나 안타깝고 아쉽다. 한국인이니 한국 이름을 갖고 있는 게 당연한데, 그들을 위해 왜 나의 정체성을 분리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온라인 닉네임과 본명이 영어이름인 교포 등의 경우는 제외).
이런 논리라면 한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Jörn(욘 과 왼의 중간발음)과 같은 이름의 서양인들은 한국에서 ‘영수’나 ‘민식’ 같은 이름 하나 만들어야지.
인도나 아랍계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중국어 이름 저리 가라 할 만큼 그들의 이름은 길고 발음하기 어렵다. 워낙 이민자가 많은 독일인지라 인도인 및 아랍인들을 직장이나 일상에서 수시로 마주치는데, 그들 중 여태 "내 이름 발음하기 어려우니 영어 ㅇㅇ로 불러달라"라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정 어려우면 짧게 부를지언정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갖다 붙이진 않는다.
물론 본인 스스로 본명을 싫어하고 "반드시 영어 이름으로 불러달라"라고 부탁하면 그렇게 해준다. 이름 소유주인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겠나. 그렇지 않은 이상, 자신이 가진 본명이 가장 예쁘고 본명으로 불렸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이 빛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어 이름은 뜯어보면 예쁘고 멋진 뜻을 가진 분들이 많으니 변형되지 않은 그 자체로 널리 불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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