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밤 Sep 12. 2024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

한국보다 해외생활이 좋을 거라 생각하고 진지하게 이민을 고려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아마 한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회이슈나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부분들에서 피로감을 느낀 결과라고 생각한다.


해외든 국내든 인생의 무대를 정하는 건 본인의 몫이다. 다만, 해외를 결정했을 땐 그에 따르는 치명적인 특징 하나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건 고독과 외로움이다. 




해외생활은 기본적으로 외롭고 고독하다. 

한국서부터 가족이랑 함께 왔거나, 오자마자 반려자를 만났다면 강도가 좀 덜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혼자 오신 분들이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은 상상 그 이상이다. 


모국에서 가족, 친구, 지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들이 외국에 오는 순간부터 한 번에 삭제된다고 보면 된다. 시간만 삭제되면 다행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함께 공유한 경험과 감정들까지 모두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미래에는 매우 '한정적'으로만 가능해진다. 손만 뻗으면 닿았을 사람들이 이제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고, 저녁에 친구들과 기울이는 맥주 한 잔을 위해 치러야 하는 물리적 금전적 값이 수 백배 올라간다. 


유학시절 나는 구동독 도시 외진 동네의 기숙사에 살았다. 창문 아래에 책상을 두었는데, 공부를 하다 문득 밖을 바라보면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반짝이는 불빛 하나가 눈에 보이는 전부였다. 옆방에서 잡담을 나누는 소리가 들리지만 나를 향한 소리는 없었고, 오직 내가 볼 수 있는 건 고요하고 적막하기 짝이 없는 어둡고 건조한 독일겨울 풍경뿐이었다. 


사람들 틈에 섞이고 싶어 카페를 가서 앉아있어도, 시내를 걸어도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는 사람 없는 거리를 혼자 걸어도 튀지 않는 외모에 차림인데 여기서는 그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녀도 존재 자체로 튀었다. 그들은 나를 알지만 나는 그들을 모르는 환경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한국에서 느꼈던 외로움과 차원이 달랐고,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 및 검열당하는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독일생활에 도가 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은 그런 것들에 무뎌졌다. 독일 전국을 돌아 돌아 최대한 내 맘이 편한 곳을 찾았고,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남편을 만나며 지독한 외로움은 많은 부분 덮였다. 그 외로움과 고독이 '사라졌다'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해외생활을 하는 이상 외로움은 기본으로 가져가야 할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고 해결해주지 못하는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해결책은 없다. 그저 마음을 다잡을 뿐이다. 

고독과 외로움을 이겨보겠다고 아무나 만나고 익명의 무리에 섞여들었다간 인생 망치는 곤란한 일이 생기거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저 끊임없이 내 안에서 '여기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 그 목적을 공고히 닦아나가는 게 외로움을 대하는 나의 방법이다. 그마저 힘들거나 대안이 없으면 돌아가도 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저, 선택에 따른 책임은 본인의 몫이니까.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병원에선 뻔뻔함을 장착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