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선 병원에 가기 전 얼굴에 최소한 얇은 철판 하나 정도의 뻔뻔함은 장착하는 게 좋다. 병원의 '푸대접'에 태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독일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보거나, 엑스레이 혹은 MRI를 찍어봤다면 반드시 한 번쯤은 경험하는 일이다.
한국 산부인과에서는 보통 하의탈의를 한 뒤, 검진치마라고 부르는 뒤가 트인 치마를 입고 검진대(분만대)에 앉는다. 산부인과 의자는 여성들 사이에서 '굴욕의자'라고 불리는데, 검진 자세가 다소 민망하고 속옷까지 탈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검진치마로 환자의 시야를 차단하여 최소한의 민망함을 줄여준다.
하지만 독일엔 검진치마가 없다. 1회용 검진치마도, 그 흔한 가림막조차 없다. 심지어 탈의실도 그냥 진료실 안 구석에 신발을 겨우 벗을 정도의 작은 공간뿐이다. 하의탈의를 한 환자는 그 상태 그대로, 곰돌이 푸우가 되어 검진대에 누워야 한다. 민망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하체가 상당히 썰렁하다.
정형외과 엑스레이나 MRI도 마찬가지다. 검진용, 1회용 옷 따위는 없다. 상의를 찍으면 상의탈의, 하의를 찍으면 하의탈의를 한다(와이어가 없는 속옷은 입어도 된다). 최근 목 부근 MRI를 찍을 때 상의탈의를 시킨 채 탈의실에 수 십 분을 대기시켜 목욕탕에 온 건지 병원에 온 건지 황당했던 적이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독일 병원들은 푸대접으로 느껴질 정도로 환자의 민망함을 배려해주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독일은 없으면 안 될 것들은 다 있는데, 있으면 편리한 것들은 하나도 없어."라는 엄마의 말이 여지없이 적용되는 부분이다. 없으면 안 되는 검진대는 있지만, 있으면 좋은 검진치마는 없다.
처음에는 병원을 바꿔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이었지만, 여러 병원에서 같은 경험을 하고 난 지금은 오히려 독일 병원들이 자신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검진치마가 있든 없든 산부인과는 여성을 검진하는 곳이고, 탈의를 하든 말든 방사선과에선 MRI만 잘 찍으면 되는 것 아닌가. 또한 환자는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는 것이기에, 병원에서 사람의 몸은 '검진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망함이나 수치심 같은 감정적인 부분은 꺼낼 필요도 없고, 병원 역시 진료에 관계없는 부분을 배려할 필요가 없다.
예상컨대 독일 산부인과에 검진치마를 도입하자고 하면 많은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힐 것이다. 환경오염이니, 불필요한 비용 증가니, 공간낭비니 하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이고, 결국은 사지 말자고 결정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니 독일 병원에서 '민망함을 줄여줄' 세심한 서비스 따위는 기대하지 말자. 병원은 그저 몸뚱이를 검사하는 장소라고 생각을 고쳐먹는 게 더 빠른 솔루션이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