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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Aug 30. 2024

역이민에 대한 단상

근 2-3년 전부터 독일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람들의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수치로 따지면 돌아가는 사람보다 해외로 나오는 사람이 여전히 많겠지만, 그 반대 역시 꾸준히 늘고 있는 건 주목할 만하다.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해외에서 잘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발적으로 한국행을 택하는 것, 바로 '역이민'이다. 역이민은 이민의지가 있으나 실패하고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정착실패와는 구분된다. 




역이민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왜 돌아가려고 하냐? 좋아서 나올 땐 언제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역이민의 이유를 해외의 불편한 의료체계나 느린 행정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해외, 특히 이민국으로 선호되는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등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만큼 아플 때 바로 의사 얼굴보기 쉬운 나라는 없다. 


하지만 의료체계나 행정시스템은 역이민의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다. 나는 역이민을 하는 사람들이 결코 이러한 이유만 갖고 선택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해외에서 채 1년도 못버티고 나왔을 테니까. 역이민도 이민만큼 큰 결정이고 큰 일이다. 사람마다 갖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대표적으로 '가족, 친구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긴장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친구

아시아인들의 눈에 아무리 독립적이고 개인적으로 보이는 서양 사람들도 나이를 먹고 가정을 꾸릴 30대, 40대가 되면 의외로 모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시절 내내 해외를 돌다가도 마치 회귀본능처럼 친구 옆으로, 부모님 옆으로 돌아온다. 그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답은 간단하다. "인생에서 가족과 친구보다 중요한 건 없어". 가족의 정의와 범위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본인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언제 만나도 마음 편한 친구가 있는 그곳이 바로 내 집이다. 그 사람들이 해외가 아닌 한국에 있기에 역이민을 선택하는 것이다. 


#언어는 문화 그 자체

해외에 산다는 건 다른 말로 '나의 일상을 온통 외국어로 물들이는 것'과 같다. 평생을 써온 말이 아닌 다른 언어로 살아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외국어가 유창해도 그게 심리적, 문화적 정착까지 의미하진 않는다. 그 반증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이해하려고 굳이 귀 기울여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해되는 타인의 말, 말하지 않아도 눈치로 알 수 있고, 24시간 경계하지 않아도 문화적 배경과 직감적인 촉으로 몸이 반응하는 곳. 이게 바로 모국어와 내 문화가 주는 편안함이다. 


해외생활에 만족을 느끼는 분들은 '한국에선 너무 많이 들리고 이해돼서 피곤하다'라고 할 것이고, 역이민을 선택하는 분들은 '24시간 내내 외국어로 생활하는 불편함과 긴장감이 지친다'라고 할 것이다. 


#평생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또 다른 역이민의 이유는 '신분'이다. 아무리 외국에 수 십 년 살았고 심지어 국적과 여권을 바꿨더라도 그들 눈에 나는 만년 외국인이다. 독어가 어눌하면 독일 온 지 얼마 안 된 외국인 혹은 정착 의지가 부족한 외국인으로 볼 것이다. 반대로 독어가 유창하면 그냥 독어 잘하는 외국인으로 볼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외국인인 건 변함없다. 이민자와 난민을 아무리 많이 받았더라도 동아시아 외모를 한 사람을 보자마자 '독일인'이라고 하긴 쉽지 않다. 즉, 해외에 살면 실제 여권에 쓰인 국적과 관계없이 이방인을 대하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평생.


해외거주로 인해 사회의 다수에서 소수가 되는 것. 이것에서 비롯되는 영향은 차별이나 불리함일 수도 있고, 의외로 혜택이나 존중일 수도 있다.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를 것이며 역이민의 이유가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10-20대의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역이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고, 충분히 그럴 만하다. 자아성취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한국에 없는 점들이 장점으로 크게 다가오는 나이니까. 나도 그랬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남편과 함께 노후를 생각하다 보니 20대에 매력적으로 보였던 해외생활의 장점이 영원하지 않으며, 그 이면에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또 다른 가치들이 있다는 걸 느낀다. 우리가 역이민을 할지, 아니면 아예 한국도 독일도 아닌 다른 나라로 갈지 아무도 모르지만 모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인생은 여행과 같으니까.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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