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바로 이전 스토리 <상상 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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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며 독일이민의 현실을 묘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독자분마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장기간 보고 겪은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여 적었습니다.
머릿속으로만 꿈꾸던 독일 이민을 왔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6개월. 10월 초밖에 안 됐는데 벌써 겨울이 오는지 날씨가 추워진다. 몸을 감싸는 냉기에 알람도 울리기 전 눈을 떴다. 오늘도 역시 해가 뜨지 않았다. 밖은 어둑어둑 이 날씨에 나가려니 벌써부터 심란하다. 일주일 넘게 해를 보지 못해 우울감이 최고조다. 날씨 좋을 땐 집 앞 여기저기 공사한다고 드릴 소리에 잠을 깨우더니 이젠 날씨도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아침부터 빵을 씹으려니 속이 얹히는 것 같아 그냥 대충 아무거나 주워 먹고 출근 준비를 한다. 얼마 전 자차를 샀는데 한국보다 1.5배 이상 비싼 가격에 놀라 새 차는 엄두조차 못 내고 5년 넘은 중고 경차를 샀다. 독일브랜드 역시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비싸서 쳐다보지도 못했다. 독일에서 독일차가 더 비싸다니. 주차는 매일 스트레스다. 시내라 개인 주차장이 없어서 매일 집 주변을 뱅뱅 돌며 자리를 찾아야 한다. 주차장을 빌리려고 봤더니 한 달에 100유로를 달라고 해서 포기했다.
독일까지 왔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회사에 다닌다. IT업계나 특수직군도 아니고, 독일대학 졸업자도 아니고, 독어도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건 한국 중소기업 독일지사뿐이었다. 영어마저 못했다면 이마저도 어려웠을 것 같다. 회사 분위기는 그냥 한국이다. 매니저가 한국인이라 병가 내기 쉽지 않고, 휴가는 한국보다 좀 낫지만 눈치 보이는 건 여전하다. 텃세, 편 가르기, 험담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외국인 직원들도 가담한다. 매니지먼트 레벨이 다 주재원이어서 나처럼 현채(현지채용)들은 의사결정권이 없다. 그들은 집, 차, 의료보험, 자녀지원 등의 혜택을 받지만 현채는 아무것도 없다. 모두 다 내 월급으로 해결해야 한다. 심지어 정규직 계약서도 2년 뒤에 써준단다. 독일 직원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 이직하리라 다짐하지만, 지금 이직하면 회사 종속비자가 사라져서 잘못하면 불체자가 될 수도 있기에 일단은 이직 생각을 접는다.
월급이 들어왔다. 근로계약서에 쓰여있던 월급은 허상이었다. 분명 세전 월급은 한국보다 훨씬 높았는데 받아보니 한국보다 더 낮은 달도 있었다. 독일의 미혼싱글 소득세는 약 38%, 결혼해도 애가 없으면 비슷하다는데, 미리 이걸 알았다면 나는 독일에 왔을까? 월세 1200유로를 내고 나니 1000유로 조금 넘는 돈이 남았다. 다음 주 출장인데 회사에 돈이 없다고 식사비 지원을 안 해준다고 한다. 유럽 여행은 무슨, 한 푼이라도 덜 쓰려면 일 끝나자마자 바로 집에 와야겠다.
외식값이 올라 혼밥을 해도 한 끼에 20유로, 조금만 더 시키면 30유로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외식했는데, 여기선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사치다. 매일 지나다니며 한잔씩 사 먹었던 저가커피도 포기했다. 동네 베이커리엔 아아가 없고, 그나마 아이스 음료가 있는 스벅을 매일 마셨다간 통장 다 털린다. 마트에서 장보기, 회사 점심값, 교통비만 써도 한 달에 500유로 남기기가 쉽지 않다. 어학원 비용까지 내니 300유로도 안 남는다. 독어를 해야하니 어학원을 포기할 수도 없다. 독일만 오면 돈이 금방 모일 것 같았는데 한국보다 더 안 모인다. 한국에선 부모님 집이라도 들어가면 월세는 남았는데. 여기선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삶이다.
너무 무리한 탓인지 몸살기운이 있다. 집 근처 내과에 연락하니 새 환자를 받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다른 내과에 연락하니 가정의 진단서를 가져오라고 한다. 가정의에 연락하니 다음 달 중순 예약이 가능하다며 그때까지 차를 마시며 버티라고 한다. 지난주 어깨가 아파서 예약한 정형외과의 예약은 약 2개월 뒤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회사에서 독일비자이력을 떼오라고 하는데 외국인청에는 예약 없이 들어갈 수 없다. 메일을 썼더니 답장이 없다. 전화도 안 받는다. 결국 내일 새벽 3시에 가서 선착순 줄을 서야 할 것 같다.
장을 보고 집에 가려는데 지하철이 연착됐다. 10분, 15분, 그러다 100분. 결국 포기하고 버스를 탔다. 시간개념이 철저할 것 같던 독일에서 대중교통을 타며 겪은 건 오직 연착과 '엔츌디궁(죄송하지만) 어쩌고' 방송을 들은 것뿐이다. 역마다 꼭 약을 한 것 같은 이상한 사람들까지 있어서 그들을 피해다니는 건 덤이다.
마치 중세 고성 같은 우리 집 건물은 밖에선 예뻤으나 내부로 들어오면 귀신의 집을 능가한다.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는커녕 5층까지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발 헛디디면 저세상 직행열차다. 자동 센서등이 없어서 밤에는 손을 더듬어 겨우 불을 켜며 가야 한다. 얼마 전에는 집안에 열쇠를 두고 나와 300유로 주고 열쇠공을 불렀다. 집주인에게 도어록으로 바꿔달라고 하자, 세대주 모임 투표를 통해 모든 세대주가 찬성해야 가능하고, 내가 필요해서 설치하는 거니까 설치비는 나보고 부담하란다. 알아보니 설치비까지 1000유로 가까이 든다. 세대주 모임은 내년 7월이라고 한다. 목돈도 부담스럽고 기다리기 지치니 무거워도 그냥 열쇠를 들고녀야겠다.
우편함엔 택배가 옆 도시 픽업스테이션으로 갔다는 쪽지가 있다. 어제 나는 분명 집에 있었는데, 벨도 누르지 않고 지나쳐버린 택배기사. 이젠 택배가 집에 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이다. 느리고 제멋대로인 독일 택배를 보며 한국의 택배시스템은 여기보다 100년은 앞서있는 기분이다.
쌀쌀한 날씨지만 라디에이터를 켜기 겁난다. 난방비가 무섭기 때문이다. 집 관리비에 포함된 난방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잘못하면 난방비 폭탄을 맞는다. 내 지인도 작년 한해에만 200만 원을 추가로 냈다고 한다. 수면양말, 패딩, 담요까지 모든 방한용품을 꺼내 입었다. 그래도 한기가 가시질 않는다. 한국 집에선 한겨울에 반팔을 입기도 했는데 이곳에선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바닥난방 집에 사는 지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긴, 온돌시스템 자체가 없으니 그정도의 온기를 기대하는 자체가 바보다. 신축 아파트에 들어가면 좀 나을텐데, 같은 월세로는 고시원 수준 크기로 가야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등 뒤에서 누가 소리를 지른다. 건물 3층에 사는 할머니가 나를 빤히 지켜보고 있다가 분리수거를 잘못하자 대뜸 고함을 질렀다. 그러며 혀를 끌끌 찬다. 이게 바로 텃세인가? 내가 독어를 할 줄 알았다면 좀 나았을까?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가? 별 생각이 다 든다. 다시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된다고 하니 답답하다.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다. 외롭고 춥고 고독하다. 오늘따라 한국 집, 가족과 친구들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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