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의 한 소도시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행사장에 다녀왔다.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마켓이 아니고, 1인당 20유로(300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야 하는 행사장이다. 아마 이곳이 나의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크리스마스 마켓 방문이 될 것 같다.
행사장은 들어가는 길목부터 쉽지 않았다. 인구 약 10만 명 남짓인 작은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거의 유일하게 열리는 행사다 보니 주민들 및 근교 방문객들까지 몰려 곤돌라를 타는 줄만 40분을 넘게 기다렸다(행사장이 산 위라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곤돌라 탑승비 별도). 그날은 영하,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어서 곤돌라를 타기 전부터 발끝부터 온몸에 냉기가 감돌았다. 독자분들도 아시다시피 독일의 추위는 온도만 보면 한국에 비해 꽤 높지만, 실제 체감온도는 그보다 3~5도 더 낮다. 하루종일 해가 없는 데다 바람이 차고 습해서 뼈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0도만 되어도 두툼한 재킷이나 롱패딩이 필수다.
몸이 반쯤 얼었을 때 드디어 행사장 입구에 도착했다. 독일 살면서 웨이팅을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은데 최근 들어 두바이 초콜릿 오픈런(뉴스에서 봤다)부터 행사장 줄까지, 결국 사람 사는데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행사장은 우리나라 루미나리에(전등축제)와 비슷했다. 여기저기 장식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릴 땐 추운 줄도 모르고 그저 눈 오면 좋아했는데, 이젠 눈만 보면 춥고 심란하니 동심은 1%도 안 남은 것 같다.
밖에 너무 오래 서있었던 탓인지 허기가 졌고 우리는 행사장 내 간식 매대를 찾았다. 몸을 녹이기 위해 따뜻한 요리인 <구운 버섯> 하나랑 <굴라쉬 수프> 한 접시, 그리고 <글뤼바인>을 시켰다. 그런데 직원분이 음식을 내어주는 모양새가 어딘지 모르게 영 불편해 보였다. 음식을 받아 들자마자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접시가 종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종이접시라니? 국물요리를 종이에 담았다고?
종이접시는 모양이 잡히지 않고 바닥까지 둥근 모양이라 한 손으로는 도저히 들 수 없었다. 두 손으로 힘을 주지 않고 감싸야 들 수 있었고, 손이 부족했기에 음식과 음료를 팔에 끼고 겨우 테이블로 왔다. 마치 맨손에 물을 담고 걷는 것 같았다.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굴라쉬는 탕요리보다 스튜에 가깝지만 그래도 '국물이 주된' 요리라 종이접시에 담는 순간부터 접시에 스며든다. 시간을 지체하면 접시가 뚫릴 수도 있었기에 우리는 수프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행사장은 전부 야외에, 카드결제 안되고, 국물은 종이에 담아주질 않나, 심지어 나무 숟가락이랑 포크는 끝이 무디게 만들어져 음식이 잘 집어지지도 않았다. 곤돌라 비용까지 45000원 주고 들어온 비싼 행사장인데 마치 과거여행을 온 것 같았다. 독일도 2024년에 살고 있는 거 맞지?
나는 개인적으로 종이빨대를 매우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다. 한국서 종이빨대에 대한 찬반논란이 오갈 때 독일은 이미 대중화되기 시작했는데, 종이빨대로 마시는 커피는 물먹은 전화번호부책 종이를 씹는 맛과 같았다. 혹시 종이빨대 맛으로 커피맛을 눌러 저품질 커피를 대중화 시키려는 빅픽쳐인가? 분명 종이빨대도 생산에 화학약품과 공정이 들어가고 쓰레기로 배출될 텐데 진짜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도 미지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종이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오히려 환경에 더 악영향을 준다는 보고서까지 줄지어 나오고 있다.
그런데 독일은 거기에 한술 더 떠 종이접시까지 도입한 걸 보니 환경 외치다가 원시시대로 회귀할 지경이다.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게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이유일 텐데, 종이 외치다가 음식 맛이나 편의성은 갖다 버리게 생겼다. 게다가 행사장 어디에도 그 흔한 난로텐트하나 설치하지 않아 전부 야외였다.
이날 이벤트에 다녀온 우리의 후기는 짧고 명료했다. 독일의 서비스는 시대를 역행하는 중이다. 그리고 제발 종이빨대와 종이접시가 더 이상 퍼지지 않았으면.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