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중순부터 12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독일 전역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마켓으로 유명한 도시엔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 그렇지 않은 도시라도 동네 및 인근 주민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어딜 가나 많은 사람이 모인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 웃으며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크리스마스 마켓. 그렇게 평화롭게 지나갔으면 좋으련만 올해 독일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사건이 일어났다.
12월 20일 저녁, 막데부르크(베를린에서 약 2시간 떨어진 도시) 시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검은색 BMW 한대가 마켓 안 군중들을 향해 약 400m를 돌진했다. 그 길에 있던 사람들은 쓰러지고 다치거나 사망했다.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최연소 피해자는 9살짜리 아이로, 현재까지 총 5명 사망, 수 십 명이 다쳐서 치료 중이며 생사를 오가는 사람도 있다.
범인은 50세의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남성이었다. 그는 한 종합병원의 정신과 의사였다. 2006년 처음 독일에 왔고, 2016년 난민 망명자격을 인정받아 현재는 영주권으로 독일에 거주 중이다. 병원에선 주로 범죄자들의 교화 분야에 있었으며, 올해 10월 말부터는 지속적인 병가로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에서 '닥터 구글'이라는 조롱조의 별명을 갖고 있던 걸로 보아 실력 없는 의사라는 평가를 들어온 것 같다.
여기까지 보면 일단 '이슬람 국가 출신의 난민'이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독일에 들어온 수 백만명의 난민 절대다수는 중동 무슬림이고, 실제로 난민을 받기 시작하며 독일의 범죄율도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 언론에 따르면 범인은 오히려 이슬람을 강하게 비판하고 사우디 아라비아 여성들의 인권신장을 주장했던 '반이슬람주의자'라고 한다. 범죄의 원인이 될만한 점으로는 그가 '독일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들이 받는 대우에 불만을 가졌다'는 점, '독일의 포용적 난민정책을 싫어했다는 점', 그리고 '정신과 병력이 있던 점' 등이 있다. 즉, 본인은 난민으로 왔지만 난민정책을 싫어했고, 정신과 의사지만 정신병 환자였다는 것.
솔직히 이러한 독일 언론의 분석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독일 메이저 언론사들은 댓글기능도 막아놨고, 무엇보다 독일은 내년 2월 말 연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극우정당으로 불리는 AfD의 기세가 점점 강해지면서 다른 정당들이 이를 상당히 경계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범인이 난민이었고 만약 그게 범행동기였다고 하면 AfD의 지지율이 더 올라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AfD를 경계하는 정당들은 이번 사건이 인종차별이나 혐오로 이어지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범인이 난민을 싫어하는 AfD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을지, 난민으로서 본인이 독일에서 받은 대우가 불만이었을지 모르나,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비슷하다.
한 가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독일 당국이 이미 2015년에 이 남성(범인)에 대한 정보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나 추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3년에도 범인이 의사협회를 상대로 협박한 정황이 있었고, 2015년 독일연방범죄수사국에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남성이 테러를 계획할 수 있다"는 정보가 전달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독일은 이미 이 남성의 위험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던 상태에서 이번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외모, 문화, 종교 등 민족적 유사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받아온 난민과 그에 따른 범죄율 상승. 그리고 보안 경고가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독일범죄수사국. 여기에 펜스나 안전벽 없이 완전 개방 형태로 운영된 크리스마스 마켓까지. 어쩌면 보안에 대한 독일의 안일함이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8년 전에도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에 대형 화물차가 돌진하여 12명의 사망자를 냈던 사고가 있었는데(당시 범행동기는 이슬람 극단주의), 그때와 똑같은 형태의 테러를 어째서 대비하지 못했는지? 인간이 과거를 통해 배운다는 말은 그저 듣기 좋은 말 같다. 배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망각해서 참극을 또 겪는 게 아닐지.
어쨌든 일은 벌어졌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말이 없고, 유족들은 앞으로 평생 매년 크리스마스를 슬프게 보낼 것이다. 진짜 범행 동기가 무엇이든 난민에 대한 반감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2014년 난민 반대시위가 외국인 혐오 시위로 번지는 걸 직접 보고 매일 겪었던 사람으로서, 독일이 무분별한 난민 수용을 멈추고 무고한 외국인들에게 혐오의 불똥 튀지 않도록 잘 컨트롤해 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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