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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자유, 감정표현의 자유

by 가을밤

크리스마스 주간 마지막날. 연휴기간 내내 집콕하다가 외출하려고 좀 일찍 눈을 떴다. 이틀 내내 안개가 자욱이 깔려 공포영화를 방불케 하는 독일의 날씨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여느 때와 같이 핸드폰을 켜고 독일 뉴스를 보는데 이상한 헤드라인이 눈에 띄었다.


<Flugzeugunglück in Südkorea (대한민국 비행기 사고)>


비몽사몽 기사를 읽으며 믿기지 않는 내용에 잘못 봤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사를 끝까지 읽었을 땐 이 엄청난 사고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만이 또렷해졌다. 올해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힘들까. 정치도 난리, 경제도 난리, 거기다 대형 인명피해까지. 그렇지 않아도 여행이 일상의 거의 유일한 숨통인 한국에 왜 이런 시련이 닥칠까. 외출을 준비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속이 상했다. 멀리 있지만 마음이 조금이나마 닿았으면 하여 SNS에 짤막하게 애도의 글을 올렸다.




업로드를 하자 SNS 알고리즘은 나를 오늘 참사와 연관된 다른 유저들의 글로 이끌어주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띈 글이 있었으니, "오늘 같은 날 어디 맛집 간 거, 일상 얘기를 쓰는 사람은 인성에 문제 있어서 차단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이 꽤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픈 일이 일어난 건 맞다. 그래서 나도 애도했고, 마음으로 깊이 슬퍼했다. 하지만 그걸 '온라인에 드러내지 않았다'고하여 그들이 슬프지 않거나 애도하지 않는다고 보는 건 선 넘은 참견이자, 선(善)으로 포장한 강압이다. 누구나 생각과 감정의 자유가 있으며, 그걸 자신만의 방식대로 표현할 자유도 있다. SNS가 도입되며 우리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시시각각 볼 수 있게 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걸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고 비난 혹은 칭찬을 놀이처럼 일삼고 있다.


누군가는 그저 묵묵히 일상을 살아가며 마음으로만 애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슬픔을 잊기 위해 일부러 웃을 수 있는 콘텐츠를 올릴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말로 표현하기 부족하여 그저 침묵할 수도 있다. 설령 누군가가 애도하지 않는다 한들, 그 또한 비난할 권리는 없다. 어떤 방식으로 슬픔에 공감하고 아픔을 나누든 간에 실제 가족을 잃은 유족보다 더 슬프고 참담할까.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 조차 없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표현 방식을 공개적인 위치에 박제하여 비난하는 건 공산주의나 다름없다. 실제 사람을 잡아와서 물리적으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여 모든 비난의 종류가 정당화될 수 없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온라인에서 서로를 검열하고 공개적으로 벌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그러한 행위를 이어가거나, 전파하고 있다.


타인의 감정에 대한 평가가 아닌,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그런 시각도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나와 다른 의견에도 귀 기울이며,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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