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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살아도 고민되는 이것

by 가을밤

한국을 벗어나 해외에 산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한국에서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발목을 붙잡기도 하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답하기 어렵고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건 '은퇴 후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는 나름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호기롭고 용기 있게 해외에 왔지만 인생은 어디에 있어도 흘러가는 법, 나이 먹을수록 중요하게 다가오는 건 노년의 삶인 것 같다. 젊을 때는 다시 일어서고 일할 에너지라도 있지만 늙어서는 그조차 쉽지 않으니, 인생에서 가장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건 젊은 시절이 아니라 노년이다.




"독일은 복지가 좋고 연금이 나오니 오히려 나이 들어서 더 좋지 않나요?"


이렇게 물으시는 분들이 계신데, 정말 독일이 노년을 보내기에 좋은 나라라면 왜 그 많은 독일의 어르신들은 일찌감치 해외 이주를 고려하고 다른 나라에 서둘러 부동산을 구매하는 것일까. 적어도 내 주변에 독일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독일에서 노년만큼은 보내고 싶지 않다"라고 입을모아 말한다.


사실 복지가 좋다는 건 일상의 퀄리티와는 큰 관련이 없다. 노년에는 더더욱.


지금까지 내가 느낀 독일의 복지는 저렴한 학비, 기업에서 근로자의 권리보장, 나라에서 주는 양육비, 출산휴가 보장, 작은 수술까지 커버해 주는 의료보험 정도다. 노년에는 다른 거 다 빠지고 의료보험이 원톱으로 중요한 요소가 될 텐데 독일의 공보험은 이미 여러 차례 스토리에서 다뤘다시피, 심한 말로 빨리 죽으라는 시스템이다. 아플 때 병원에 가질 못하는데 이걸 복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일상의 퀄리티를 결정짓는 건 나라의 복지정책이 아니라 편의성/편리성이다. 하지만 독일은 사회 특성상 편의나 편리와는 아주 거리가 먼 나라다. 병원부터 택배, 그리고 행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편리와 담을 쌓은 곳이다.




또 노년에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친구, 따뜻한 사람들과 친절한 서비스.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일상에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작은 일 하나도 비중있게 느껴질 것이다. 아침 7시에 장을 보고 우체국 가는 게 하루 일과인 어르신들도 많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렇지 않아도 마주치는 사람이 적은 노년에, 그나마 얼굴 보는 몇몇 사람들과 서비스를 이용할 때 친절한 대우를 받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일은 친절한 서비스, 아름다운 미소 같은 개념과도 거리가 멀다. 식당에서 팁을 안 주면 직원의 찌푸린 얼굴을 마주해야 하고, 대놓고 면전에서 사람을 무시하는 직원을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빈도수는 독일인 어르신들보다 높을 것이다. 왜? 우리는 누가봐도 아시아인, 외국인이니까.


앞서 언급한 점들보다 독일에서 노년을 상상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날씨다.

한국에 사시는 분들은 해를 자주 보기 때문에 해 없는 환경을 상상하기 어려워하신다. 최대한 상상하기 쉽게 묘사해면, 1년 중 6-8개월은 하늘 전체에 회색이 깔려있다. 24시간 하루종일.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잘 때까지 빛을 1분도 볼 수 없는 날이 많다. 게다가 겨울 약 3개월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공포영화의 첫 장면 그 자체다. 어디서 귀신이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무리 날씨의 영향을 안 받는 분이라 할지라도 독일에 오면 날씨의 손아귀에 놀아날 것이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기분이 바뀌고 한국에선 생각해 본 적 없던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에 햇빛을 못 봐서 몸이 하나둘씩 고장 나는 건 덤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 먹으면 날씨에 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여기선 아마 두 배는 더할 것이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독일 10년 이상 거주)과 이런 얘기를 나누며 마지막으로 한 말은, "독일 어르신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였다. 물론 우리가 본 사례에 한정된 것이지만 분명 모국에서 노년을 보내는 분들인데도 결코 그들이 행복하고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더 아등바등, 인상은 거칠어지고 신체는 누가 봐도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힘드신 분들을 일상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말그대로 쌩쌩한 노인 분들을 열에 두 명도 못본 것 같다.


그 지인은 은퇴 후 이주할 나라를 이미 정했고 늦어도 10년 내엔 그곳에 부동산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당연히 날씨가 좋고, 병원 가기 쉽고, 영어도 잘통하고, 밝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다. 어디가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30대 중반이 넘어 역이민 혹은 독일에서 제3국으로의 이주를 결정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는 걸 보면 독일은 노년을 보내기에 결코 적합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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