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거주비율 50%가 넘는 독일이지만 그렇다고 독일인들이 집에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월세로 평생을 사는 사람도 많기에 월세집을 고르더라도 진짜 내 집을 고르는 것처럼 이것저것 컨디션 따져서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나 같아도 단 반년을 살더라도 좋은 집에 살고 싶기에 그들의 맘이 이해가 간다. 매매로 간다면 여기에 집 값, 위치 등 다른 조건들이 추가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독일인들이 말하는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
한국인의 입장에선 일단 집의 위치와 방향을 볼 것이다. 집 주변에 마트나 병원, 은행과 같은 편의시설이 충분한지, 그리고 집은 남향인지. 아이가 있다면 학군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투자가치다. 향후 집 값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지 체크하지 않고 집을 사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독일인들은 우리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기준을 갖고 있다. (아래 내용이 모든 독일인을 대변할 순 없다는 점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위치를 볼 때 우리나라는 편의/교통시설을 최우선으로 놓고 보는 반면, 독일에선 이런 중심가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다. 기차(지하철) 역 주변은 대체적으로 치안이 좋지 않고, 편의시설이 많을 시 소음이 있기 때문에 자차만 있다면 일부러 중심가와 좀 떨어진 집을 찾는다.
또한, 직주근접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출근시간 1-2시간이 일반적인 한국과 달리 독일에선 30분 내외의 통근시간을 이상적으로 보며 그 이상 넘어갈 시 진지하게 이사를 고려한다.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소도시에도 주거지가 형성되는 이유는 거기에 그들의 직장이 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집 자체를 볼 땐 '본인에게 맞는 집의 구조'를 중시한다. 무조건 큰 집이 좋다가 아니라 본인 기준에 맞는 크기와 구조를 선호한다. 아이가 둘인데 20평에 사는 사람도 있고, 아이가 없어도 40평에 사는 사람도 있다. 경제력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보다는 철저히 개인적 기준에 의해 고른다. '이 정도면 몇 평에 살아야지'와 같은 사회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남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반려동물이 있다면 동물을 키우기에 적합한 집인지도 까다롭게 따진다. 주변에 산책로는 충분한지, 월세라면 집주인이 동의하는지 반드시 체크한다. 자가를 매매하면서 오직 반려견을 위해 바닥을 전부 타일로 깐 독일인도 있었다.
"발코니 있어? 욕실에 욕조 있어? 욕실에 창문 있어? 바닥 난방이야? 그럼 퍼펙트한 집이네!"
실제로 자녀가 있는 독일인에게 들은 말이다. 이 말엔 학군, 위치, 교통, 투자가치와 같은 점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
다른 기준으로 독일인들은 '직접 관리가 가능한 집인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젊었을 때 주택에 살다가 은퇴 후 아파트로 이사 가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체력적으로 더 이상 집을 관리하기 힘들어서 이사를 결정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한국에서 집을 고르는 기준은 사회적, 경제적 즉, 외적 기준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독일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만 10번 넘게 이사하면서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독일에서 집은 나와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이자 생활터전이 되는 기준, 그리고 오랜 기간 살면서 꾸준히 관리하고 가꾸며 지내야 하는 장소다. 추후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단기간 사고팔며 금전적 이득을 올리는 상품이 아니라 집 그 자체의 역할이 더 큰 것 같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