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은 자신의 행동에는 관대하면서 남한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중성을 말한다. 독일에도 이러한 내로남불이 있으니, 바로 <독일식 내로남불 소통법>이다.
살면서 항의할 일이 생기거나, 상대방의 액션을 요구할 때 한국은 - 빠른 대응, 신속한 처리, 개런티 기간 내 무료서비스, 친절한 대응이 중요하다. 모범적이지 않은 업체라 할지라도 이 중 1-2가지는 지키는 편이다.
하지만 독일은 일단 '무대응', 그다음은 '내로남불'로 대응한다.
실제 사례를 가져와서 이야기해보겠다.
완공한 지 1년밖에 안 된 신축 아파트의 바닥난방이 작동하지 않아 100가구 중 10가구가 건축사에 수리 요청을 했다. 독일 신축 주택은 5년 개런티가 있기에 하자가 생길 시 건축사에 연락하면 된다. 하지만 2주가 넘도록 답장이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하면 메일을 쓰라고 했다. 독일에서 통상 메일은 50%의 확률로 2주 내에 답변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답장 달라"는 메일을 다시 써야 한다. 답답한 세입자들은 재촉 메일을 여러 번 썼고, 그로부터 다시 2주 넘게 소요됐다.
장장 4주가 지나서 받은 건축사의 답장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매뉴얼 지켰어요? 안 지키고도 우리 부르는 거면 출장비, 인건비 다 입주자들한테 청구할 겁니다."
이 짧은 문장을 해석하자면 이렇다.
- 우리가 집을 지어서 당신들한테 줄 때 매뉴얼을 주지 않았나. 거기 바닥난방에 관한 특징과 관리법 그리고 사용법이 쓰여있는데 그거 다 해보고 연락하는 거야? 만약 안 해보고 그냥 무작정 우리한테 연락하는 거고 우리가 가서 봤을 때 이상 없으면 우리 책임 아니고 니 책임인 거 알지? 그 책임 돈으로 물을거야.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입주민 입장에선 집문제 중에서도 큰 부분인, 무려 바닥난방이 안되는데 집주인이나 건축사/관리사에 연락하는 건 당연하다. 심지어 신축은 5년 보증기간도 있는데 와서 봐달라고 한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맞다, 독일에선 잘못한 일이다. <모든 매뉴얼과 절차를 체크한 뒤> 연락했어야 하는데 섣불리 했다는 거다. 개런티 서비스 차원에서도 안되나? 안된다. 독일은 사회 모든 산업군에 걸쳐 서비스라는 것 자체가 발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전초전일 뿐, 진짜 내로남불은 이거다. 고객이 물었을 땐 원리원칙이나 절차, 매뉴얼 운운하면서 막상 본인들이 잘못했을 땐 숨어버린다. 무대응을 더 길게 이어간다거나, 잘못한 일은 쏙 빼고 어떻게 해주겠다는 짤막한 답변만 보내기도 한다. 사과의 말은 당연히 없다. 만약 '진심 어린 한마디'를 중시하는 한국분이라면 독일에서 가슴 칠 일 많이 겪으실 거다. 그들은 "어떻게든 문제만 해결하면 되잖아 왜 사과를 해?"라는 마인드다. 좋게 말하면 (느린) 문제해결형, 나쁘게 말하면 내로남불 회피형의 전형이다.
이토록 사과를 회피하고 또 회피하는 이유는, 행여나 문제의 책임이 자기한테 올까봐서다.
바닥난방이 안 되는 건 건축사 잘못이 맞는데도 사과를 안 한다고?라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우리가 일부러 잘못하려고 했어? 뭐가 기술적으로 안 맞았나 보지. 그건 잘못 아니야."라며 사과 빠진 차가운 답변을 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게 바로 '나는 원리원칙 안 지켜도 너는 지켜야돼' 라는 식의 내로남불이다. 사람 속에서 천불 나게 한다.
어쨌든 그들을 움직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한데, 첫째는 '사과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진심 어린 행동을 기대하는 순간 실망할 것이다. 그게 특히나 실수를 인정하는 일이라면.
둘째는 '반박하지 못하는 메일을 쓰는 것'이다. 다시 보일러 얘기로 돌아가서, 건축사를 한 번에 움직이게 하려면 이렇게 쓰면 된다.
"우리 집 바닥난방을 00월 00일부터 틀었고, 총 00시간을 기다려봤는데 00일간 작동하지 않았다. 바닥의 온도를 쟀을 때 00도였고, 난방을 틀어도 00도였다. 다른 방을 체크했을 땐 00도인 걸로 보아 이 방만 작동하지 않는 걸로 보인다. 당신들이 준 매뉴얼을 모두 체크해 봤으나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와서 고쳐달라."
독일문화를 모른다는 전제 하에 이렇게 메일을 쓰실 한국분들이 몇이나 계실까. 단연코 열 분 중 한 분 있을까 말까라고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은 "아니, 고장 났다면 고장 난 거지. 왜 사람말을 안 믿어?"라며 화를 내실 거다. 그렇지만 독일에선 화내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나만 열내고, 나만 분하고, 나만 억울하다.
몇년 전, 2년밖에 안된 신축 아파트에 살 때 비가 집안으로 새는데도 "바람 풍속은 재봤냐"라고 물었던 게 그들인데, 뭘 더 바라겠는가. 개인 가정집에 풍속기까지 놓아야 되냐고 반문하니 "매뉴얼에 풍속에 따른 창문 관리법이 나와있다"며 동문서답하던 그들. 실제로 풍속이 문제가 아니라 건축결함으로 판명 났고, 아파트 외벽 방수공사를 다시 했다. 공사가 끝날때까지 사과나 양해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물론 그 뒤에도 없었다.
그들의 내로남불을 못 본 척하고 단전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요청하는 것, 그게 바로 독일식 클레임 방법이자 소통법이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