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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날씨에 관한 단상

by 가을밤

유럽에 살다 보면 좋든 싫든 날씨의 영향을 참 많이 받는다.


한국 살 때보다 여가시간이 많으니 날씨 볼 시간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워낙 변덕스러운 날씨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서일 수도 있고,

날씨의 영향을 받을 나이에 유럽에 있어서 더 예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쨌든 평생 날씨정보랑 담쌓고 살았던 사람이라도 유럽에선 가장 많이 체크하는 게 날씨일 텐데, 아마도 두 번째 <변덕스러운 날씨>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특히 독일을 기점으로 중/북유럽에 사는 분들은 날씨얘기를 굉장히 많이 하시고 그중에 공통되는 내용이 있다.


바로 "독일의 겨울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해가 안 뜨고 건조하거나, 건조하지 않으면 습하고 스산하거나, 스산하지 않아도 안개로 인해 공포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독일의 겨울은 진심으로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다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게 만든다. 실제로 한국교민 포함 외국인들과 얘기해 보면 독일에 처음 온 시기에 따라 이 나라에 대한 인상이 많이 다르다. 나 역시 독일에 맨 처음 발을 디딘 건 여름이었고, 장기거주를 시작한 건 겨울이었으니 (중간에 텀이 있다), 침울한 독일의 인상이 더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고 그게 내가 독일을 묘사할 때 빠지지 않는 특징이 되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독일날씨 겪어보니 별거 아니던데. 영국이나 핀란드보다 낫던데 왜 유난이야?"


인정한다. 영국과 핀란드는 단기체류만 해봤지만 그곳에 머무는 모든 시간 날씨가 나를 괴롭혔다. 특히 핀란드는 우울이라는 단어가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의 암울함과 침전된 분위기 그 자체였다. '행복지수 1위'라는 명성은 아마도 그 우울을 가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지표이거나, 핀란드 사람들이 사우나하는 시간에만 측정한 게 아닐까.




하지만 핀란드와 영국의 날씨가 독일보다 나쁘다고 하여 "독일의 날씨가 괜찮다"는 건 맞지 않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핀란드나 영국에서 자란 사람이면 몰라도, 한국에서 자란 한국인에게 1순위 비교대상은 어디까지나 우리나라, 한국이다.


우리나라 날씨에 비교해서 독일의 날씨는 명백히 나쁘고, 우울하고, 어둡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한국에선 해가 쨍하게 뜨지 않나. 우리나라를 예로부터 '동방의 해가 뜨는 나라'라고 표현한 게 이러한 이유다. 독일은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잿빛 하늘의 나라' 혹은 '안개와 비의 나라'다 (물론 이러한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예외다).


따라서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독일의 가을/겨울이 특히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브라질 출신의 한 직장동료는 독일인과 결혼하여 함부르크(북부)에 자리를 잡았다가 날씨를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독일 최남단 오스트리아 국경 옆으로 이사를 갔고, 그제야 좀 살 것 같다는 얘기를 전했다.


제목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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