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 한국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국내 공기관에서 처리할 일이 하나 있었다. 나름 복잡한 사안이었는데, 처리과정은 이러했다:
내가 한국에 소득이 없다는 증명하는 서류를 작성해서 -> 해당기관의 지역 지점에 직접 제출하고->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서-> 다시 기관에 정보 정정을 요구해야 했다.
내가 이 과정을 안내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최소 일주일은 걸리겠군.'이었다.
독일사정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한국이고 일처리가 빠르기 때문에 나름 계산하고 일주일로 계산한 거였다. 만약 독일이었다면 약 6주가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실제로 일처리를 해보니, 1일도 아닌 정확히 3시간이 걸렸다. 즉, 독일보다 336배 빨랐다.
기관에 전화를 하니 서류서식이 있는 사이트를 문자로 보내줬다. 서류를 뽑아 작성하고 지점에 가서 제출하는 건 30분 걸렸다. 그리고 집에 와서 온라인으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서 다시 앱으로 정보정정을 신청했더니 모든 일이 완료됐다.
'디지털리제이션(독어: Digitalisierung)'이란 바로 이런 거다. 업무시간 내 비대면 안내 및 진행이 상시 가능하고, 민원접수는 예약이 필요 없으며 나머지 전 과정 또한 앱이나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
서류를 뽑아서 사인하고 그걸 스캔해서 클라우드에 올리는 독일식은 디지털화가 아니다. 간혹 '우리 기관은 완벽한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한다'라고 하면서 온라인 로그인만 하면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기관들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최초 로그인을 하기 위한 코드를 우편으로 받아야 돼서 처음 단계부터 최소 3일 이상 걸린다. 그리고 손으로 사인하는 서류는 직접 보내거나, 아니면 스캔해서 보내는 정도다. 이 무슨 디지털화의 탈을 쓴 지독한 아날로그인가. 코미디가 따로 없다.
물론 그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Datenschutz(개인정보보호) 때문에 사인은 무조건 원본으로 받아야 하고, 개인주소 확인 및 로그인 안전을 위해 코드는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는 등. 그러면 그다음 일처리에 걸리는 시간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정말로 디지털화가 제대로 구축됐다면 4주, 6주 이상 걸릴 이유도 없다. 아무리 인력이 적다 해도 컴퓨터가 몇 사람 몫을 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릴 수가 없다. 결국은 중간에 다시 아날로그 과정이 개입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독일 공기관에 가보면 나름 빠르게 일처리를 한다는 기관도 Akte(서류) 방만 몇 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독일의 문화이고 특징이겠지만 참으로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중간에 어떻게 진행되고 있다는 업데이트도 일절 없으니 가슴 칠 일도 많다. 이 정도면 독일은 디지털리제이션이 아니라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라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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