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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by 가을밤

십 수년 전 독일행은 오롯이 나 스스로 선택해서 온 길이지만, 20대 후반과 30대 중반을 이곳에서 넘기면서 해외생활이 삶의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독일이 옳고, 한국이 틀렸다는 이분법적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모국을 떠나오니 한국 안에서는 몰랐던 모국의 소중함과 한국의 훌륭함을 더 깨닫게 되고, 내 나라가 바로서야 해외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위상도 올라간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직접 살아보기 전까지 얼마나 근시안적인 시각을 갖고 살았나 하는 반성의 기회가 더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독일에게 배운 가장 큰 교훈은 - 그 무엇도 기대하지 말 것 -이었다. 상대가 기관이든, 절차든,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기대는 실망만 낳았다.


이건 한편으로 참 슬픈 얘기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환경과 시스템, 그리고 인간관계가 어쩌면 삶의 전부인데,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니.


하지만 정말 그렇다. 기대하면 실망했고, 기대하면 다쳤고, 기대하면 피해를 입었다. 워낙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았던 인사말 한마디조차 이곳에서는 기대였다. 질문을 하면 답변을 하는 기본적인 소통 방식도 기대였으며, 잘못을 했고 염치가 없으면 사과를 하는 것도 너무나 큰 기대였고, 인간적으로 좀 잘해주면 비슷하게 해주긴 커녕 호구로 봤다.


데드라인까지 일처리가 될 거라는 건 기대였고,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하면 빠르게 움직일 거라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그저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가볍디 가벼운' 미소 속에서 어떻게든 행복을 찾아내야 했고, 그러다 보니 혼자 하는 활동에 집중하는 날도 많아졌다. 적어도 나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


아마 한국에 있었어도 비슷한 감정을 겪었을 수 있지만, 해외라 그런지 더 크고 강하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게 바로 내가족이 필요한 이유이자, 내면적으로 더 단단해져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제목 사진출처: 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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