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밤 Oct 24. 2023

독일에서 나를 붙잡아준 한마디

타지생활을 버티게 하는 힘

유학시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언어도, 넘쳐나는 공부량도 아니었다.


바로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혼자라는 외로움'이었다.




긴장을 잔뜩 하고 시작한 대학원 1학기 첫 주, 나는 독일 동기들의 기에 눌려버렸다. 주변을 보니 다들 나와는 인종도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외국인들이다. 그들은 교수님 말씀 쉼표 하나까지 알아듣겠지만 나는 온 힘을 다해야 들린다. 대학생 때부터 꼭 쓰고 싶었던 논문 주제를 야심차게 들고 가니 교수는 단박에 봐줄 수 없는 주제라고 거절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컨택했던 자리도 못 얻어냈다. 그날 나는 마음이 지쳐버려 걸을 힘조차 없었다. 이제 일주일도 안 됐는데 어떻게 졸업까지 해낼지 눈앞이 깜깜했다.


한 달여간 다닌 학교는 나를 또다시 시험하려 했다. 기억을 더듬어 적는 거라 매일매일이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분명 개강한 지 꼭 한 달이 되던 그날,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서관이라 불리는 베를린 자유대 인문대학 도서관 앞 복도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쪽팔림도 내 서러움을 억누르진 못했다. 어쩌면 창피한 걸 안 들켜 다행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나에게 왜 그러냐고 묻지도, 손내밀지도 않았다.


무엇이 그토록 서러웠을까.


[여보세요]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건 한국의 가족도, 10년 지기 절친도 아닌 독일의 다른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친구였다. 독일어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고 마침 나보다 더 일찍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그 친구는 전화기 넘어 우는 나에게 매정할 정도로 차가운 말을 던졌다.

 

[너 그거 견디지 못할 거 같으면 유학 포기해. 누구나 다 힘들어. 그래도 버텨. 누가 널 도와 줄거란 기대 따윈 하지 마. 니가 힘들 때, 그때 손 내밀면 잡아주는 사람이 은인인 거야. 그게 설령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일지라도. 너 혹시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위로해줬으면 하고 생각하는 거니? 운다고 너 아무도 안 봐줘. 그만둬.]


뺨을 후려치듯 매정한 말에 서러워서 한참을 더 울었지만, 분명 나는 그 전화 이후로 마음을 달리 먹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내 독일 생활의 레벨을 최소 5단계는 올려준 은인이다. 그녀의 한마디는 유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독일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쌓은 내공의 초석이 되었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정말 보고 싶은 사람 중 하나다.




사실 외국 유학생들은 현지 학생들과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겉으로 보기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학점을 받지만, 실질적으로 현지 학생들 중 유학생을 경쟁상대로 보거나 기꺼이 상대해 줄 만큼 따라올 거라는 기대를 하는 학생은 드물다. 생각해 보라. 좋은 시험 점수를 기대하기는커녕 평소 듣는 수업조차 유학생은 백 퍼센트 알아듣지 못한다. 녹음하고 필사하고 복습과 예습을 겸해야 겨우 수업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나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첫 학기에 부담을 더 크게 느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명문대 출신에 과탑을 놓치지 않을 만큼 좋았던 성적의 '나름 잘 나가던' 학생인데 여기서는 수업도 따라가기 어렵다는 자괴감이 나를 위협했고, 이런 내 옆에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줄 가족조차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후벼 팠다.


얼마 뒤 내 논문주제를 바꾸라고 한 교수 때문에 나는 베를린에서 타 도시로 학교를 옮기고 모든 일상을 새로 적응해야 했다. 집이 없는 채로 이사했기 때문에 이삿날 버스 안에서 정말 급하게 집을 찾아 들어갔다. 새 도시는 베를린과 너무 달랐고, 오후 4시 이후에는 집 주변에 적막만이 흘렀다.


그럴 때마다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위안을 삼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거나 심지어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흔들리는 나를 어지러운 일상에서 끄집어 내준 건 바로 그 냉정했던 친구와 책 한 권이었다.

아쉽게도 그 친구는 내가 있던 곳에서 차로 6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 살아 자주 보진 못했지만 우린 중간지점인 프랑크푸르트에서 가끔 만나곤 했다.


그날도 여전히 프랑크푸르트, 선선하지만 해가 내리쬐는 화창한 날씨의 봄날이었다. 독일 제1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 시내 한복판에는 바쁜 일상 속에 슈트를 차려입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낡은 바람막이 차림에 배낭을 질끈 멘 나는 마치 멋진 모자이크 작품에 잘못 찍힌 검은 점 같았다.


명품샵 거리가 시작되는 괴테플라츠 벤츠에 잠시 앉아서 우린 유학이야기를 했다.


"그냥 버텨."

-못 하겠어. 다 나 같을까? 나만 바보인 것 같아.


"야, 무슨 소리야. 다 똑같아. 솔직히 못 알아들어도 알아듣는 척하는 애들도 있어. 그래도 어떻게든 끝마쳐야 하지 않겠어? 너 여기까지 온 이유가 그거 아냐? 아니면 왜 왔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책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주 중요한 의미나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약간의 잘못으로 전부 망쳐버리거나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 설령 완전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역은 완성되어야 해.]


나는 독일유학을 시작한 첫 해부터 지금까지 이 구절을 책과 다이어리 곳곳에 적어놓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펼쳐본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절망의 절벽 낭떠러지 같이 느껴져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것. 그리고 설령 어떤 일이 완벽하지 않아도 본질적인 의미는 변질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나는 수많은 불확신과 견딜 수 없는 외로움 속에서 학위를 잘 마칠 수 있었고, 여전히 독일에 있다.



제목 사진출처:  Warren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친구들에게 정 없단 소리를 들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