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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23. 2023

한국 친구들에게 정 없단 소리를 들었다

한국과 독일의 더치페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정이 많다.


개인주의니 각자도생이니 해도 서양문화랑 비교하면 여전히 한국분들이 정이 많다고 느껴지는데, 그중 큰 이유는 '돈'과 관련되어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도와주고, 돈을 요구하지 않고 먹을 것을 나눠주거나, 단지 나이가 많거나 친구라는 이유로 타인의 식사비를 기꺼이 지불해 주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생계와 직결되는 것이라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남을 위해 돈을 지출하는 건 생계를 일부 떼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은 '정' 이외의 다른 이유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유학생활 막바지에 접어들 때쯤 가족과 친구를 보러 한국에 갔다. 언제나 그렇듯 절친한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고 2차에 갔다. 나는 20대 초반 이후로 거의 술을 하지 않아 물을 마셨고, 친구들은 술을 마셨다. 약 4잔 정도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자리를 파하기 전, 계산을 하는데 '나는 술은 안 마셨으니 술 값은 빼고 계산해 달라'라고 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며칠 뒤, 나에게 장난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너 진짜 독일스러워졌어. 정 없어!"


그 이유는 며칠 전 내가 술 값을 빼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행동이 정 없게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을 나는 정말 몰랐다. 매년 만나온 친구들인데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는 건 내가 이전에는 안 그랬다는 뜻일 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당시 독일서 한국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고(우리 학과에도 한국인이 없었다) 독일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영수증에 내가 먹은 항목만 계산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독일서는 돈을 내주려면 식사 전이나 후에 "Ich lade dich ein (내가 살게)."라고 말하기 때문에 서로 별 말이 없으면 무조건 더치페이였다. 그리고 이것을 정 없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문화차이였고, 한창 독일문화에 적응해 가던 시기라 한국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독일식 행동이 나온 것 같다. 다행히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들은 고맙게도 이러한 나의 태도를 독일에 잘 적응해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이해해 주었다.




함께 밥을 먹으면 누가 얼마를 먹든 1/n로 나눠 계산하는 한국문화와 정확히 내 몫만 계산하는 독일문화. 둘 중 어느 쪽이 좋다는 가치평가는 할 수 없다. 한국의 방식도 남에게 손해를 입히는 게 아닌 이상 그저 문화의 일부일 뿐이다. 물론 모두가 1유로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방법을 고르라면 독일쪽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래서 독일의 방식이 표면적으로는 더 깔끔하고 편하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독일에서 한국사람과 식사하거나 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최대한 '우리의 정감 가득한' 방식을 존중하고, 친한 친구들 끼리는 돈을 모아서 쓴다. 그러면 조금 더 쓸지언정, 누가 무엇을 얼마나 먹었느냐를 계산하고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함께하는 시간'에 오롯이 집중하고 마음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엔 어리기도 했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던 학생이라 그 사건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제는 돈이 생기면 나 한 사람에게 쓰는 것보다 좋은 사람들에게 밥 한 끼, 못해도 달콤한 디저트라도 대접하는 게 가치 있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것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한국문화'를 유지해도 좋을 것 같다.



제목 사진출처: Simon Maag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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