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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22. 2023

부모님과 여행할 때 화내지 않는 이유

나의 가족여행 철칙

교환학생 시절, 우리 가족은 독일에 있는 딸내미 덕을 본다고 첫 유럽여행을 독일로 오셨다. 


여행계획을 100% 딸에게 일임하시며 유럽여행이 워낙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고 실제 물가가 체감이 안되시니 '아껴서' 계획을 짜보라고 하셨다. 당시엔 나도 이제 막 독일을 알아가던 시기이고 유럽은 더욱 서툴렀던지라 혼자 또는 친구들이랑 여행하던 시각으로 계획을 짰다. 


호텔숙박은 최대한 줄이고 호스텔을 예약했으며 (당시엔 에어비엔비도 유명하지 않았다), 그나마 가족 넷이 욕실이 딸린 호스텔 독방을 쓸 수 있으니 괜찮은 컨디션이라고 생각했다. 현지식을 먹어보는 게 진짜 여행이라며 호스텔 조식도 거의 예약하지 않았다. 이동은 무조건 기차와 대중교통으로 저렴한 시간대로 골랐기에 어떤 날은 밤늦게 도착하여 늦은 저녁에 역 근처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운 적도 있다. 학생이었던 나는 이것도 큰 지출이라고 생각했고 알뜰하게 여행하고 싶다고 하셨으니 만족하실 거라 생각했다. 


여행 말미에 엄마는 경비가 너무 많이 남았다며 내게 용돈을 주셨고, 주방용품까지 세트로 사셨음에도 심지어 돈이 남았다. 알뜰하게 끝난 여행에 나는 정말 만족스럽고 큰 효도를 해드린 것 같이 뿌듯했다. 




어쩜 그토록 어리고 미성숙한 판단이었을까. 

저렴한 현지식 먹고 빙빙 돌아가는 느린 기차를 타고 다니는 게 낭만이었던 20대 어린 학생의 시각으로 부모님을 여행시켜 드린 건 사실은 효도보단 불효에 가까웠다. 아빠는 그때를 회상하시며 지금도 '우리 딸이 지나치게 알뜰했지' 하며 껄껄 웃으신다.


부모님께선 추억이라며 괜찮다고 하시지만, 내 인생에서 이불킥하는 사연 중 하나다. 내가 어려서 몰랐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기에 부모님 인생의 첫 유럽여행을 망쳐버린 것 같고, 힘든 여행을 하시면서 한 번도 짜증을 안 내신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몇 년 간 죄스러운 기분이었다. 나이를 먹고 여행의 경험이 쌓여가며 그때 그렇게 하면 안 되었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온 가족이 함께 한 여행 중 (스위스)



나는 그 뒤로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꼭 지키는 철칙이 생겼다. 


첫째,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몸이 편한 여행을 한다. 숙박은 무조건 역 10분 이내의 역세권 호텔, 조식은 필수다. 조식이 없으면 카페나 식당 찾아 헤매다가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고생은 고생대로 할 수 있다. 호텔도 여행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숙박경험이 나쁘면 여행 전체가 편하지 않다.

둘째, 한식은 최대한 많이 가져오시라고 하고,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한식당을 간다. 고작 20 몇 년 한국음식을 먹은 나도 해외에서 지금까지 한국음식을 찾는데, 그보다 최소 20년 이상을 더 드신 부모님은 얼마나 힘드실까. 음식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며 살아온 환경 그 자체인데 180도 다른 곳에 가서 생전 처음 본 음식을 맛있게 드시라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셋째, 대중교통은 어디까지나 경험정도만 하게 해 드리고, 주 교통수단은 자차나 렌터카로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은 사람에 치이고 매우 피곤하므로 하루 한 두 번 이상 넣지 않는다. 




얼마 전 무심코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이런 글을 발견했다. 부모님께서 유럽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패키지를 추천했는데 기어코 자유여행을 원하셔서 함께 자유여행을 갔더니, 식사가 입에 안 맞는다, 입장료가 비싸다, 한화로는 얼마냐, 화장실 돈은 왜 내냐 등 너무 불평을 하셔서 정말 짜증 나니 웬만하면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지 말라는 글이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었다. 이래서 부모님은 데리고 다니면 안 된다, 자유여행 가려면 몰래 혼자 가라 등 수 백개 이상의 댓글과 좋아요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한 번 가기 힘든 해외 나가면 새로운 음식도 먹고 도전하고, 현지 사정을 바로바로 수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시니 짜증이 났나 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어릴 때 부모님이 나를 위해 데려가셨던 놀이공원과 수많은 여행지에서 나는 부모님께 좋은 여행메이트였을까? 울고, 떼쓰고, 조금만 걸어도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하고, 뭐 먹고 싶다고 해서 사주면 반도 안 먹고 버리고, 기껏 힘들게 휴가내서 데리고 간 바다에서는 들어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그런 나에게 부모님이 너랑 여행하는 거 짜증 나 죽겠으니 다시는 같이 안 간다고 하셨다면 어땠을까? 




지나고 나면 후회할 일은 처음부터 안 하는 게 좋다. 우리가 후회하고 모든 걸 다 해드리고 싶은 때가 오면 부모님은 같이 다니실 수 없거나, 이미 안 계실 수도 있다. 꼰대같이 들리는 이 말을 부모님과 여행하기 싫어하는 분들께 꼭 해드리고 싶다. 아무리 자식이 짜증 내고 화내며 여행해도, 한국에 돌아가시면 '우리 아들 딸 덕에 유럽 갔다 왔다'라고 여기저기 자랑하시기 바쁠 테니까. 


그리고 가족여행인데 힘들면 당연히 옆에 있는 가족한테 말하는 거다. 지나가던 유럽 사람 붙잡고 불평할 순 없지 않나. 힘들면 더 쉬운 루트로 가거나 계획을 조정하면 된다. 조금 느리게 가도, 계획했던 곳을 다 가지 못하는 것도 모두 여행의 일부다. 한국에서 큰 지출에 큰 맘먹고 10시간이 넘는 비행까지 견디고 온 가족들과 얼굴 찡그리며 보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제목/본문 사진출처: 엘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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