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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29. 2023

차 한 잔에 쇼핑몰 한 바퀴

지독히도 안 변하는 그것

우리는 보통 격주로 외식을 한다.


뭐 대단한 걸 먹는 건 아니고 그냥 집 앞이든 식당이든 '집을 벗어나서 하는 식사'에 의미를 둔다. 오늘이 격주가 되는 주말인지라 간단히 외식을 하고 디저트를 먹으러 카페를 찾았다. 스벅이나 체인카페는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찾을 수 없어서 그냥 주변에 발이 닿는 대로 새 카페에 도전하는데, 오늘은 대형 쇼핑몰의 카페가 선택되었다. 쇼핑몰 카페라면 적어도 실패는 없기에 더 생각하지 않고 그곳으로 향했다.


예상했듯 쇼핑몰 내부와 카페는 상당히 붐볐다. 다들 주말이라고 코에 바람 넣으러 나온 모양이다. 카페는 꽤 신경을 쓴 듯한 인테리어에 직원들은 유니폼까지 맞춰 입고, 잘 정돈된 곳이라 잘 왔다 싶었다.


수 십장에 달하는 메뉴판을 뒤져 주문을 하고 남편과 수다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따뜻한 실내에서 달달한 디저트를 먹으며 적당한 소음에 수다도 한 스푼 얹어주니 그래 이게 주말이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모든 게 완벽하면 꼭 어딘가 오점이 있다고 했던가.

자리를 정리하려고 메뉴판을 다시 꽂는 순간, 어색한 장소에 붙어있는 스티커 하나를 발견했다.


"Keine Kartenzahlung möglich, nur Barzahlung" (카드지불 불가, 오직 현금지불)

그리고 친절하게 영어로 Cash only.


이 거대한 쇼핑몰에서 캐시온리 실화야?

친절하게도 2개 국어로 써놨네.


일본처럼 지진(시스템 마비)때문에 현금사용을 권장하는 것도 아니고, 카드기 보급이 안 된 것도 아니고, 신용카드는 수수료 때문에 현금카드만 된대서 현금카드도 일부러 따로 갖고 다니는데 그 무엇도 안 되는 곳이 여전히 존재하는 - 그래, 여기는 독일이었다. 어쩐지 핸드폰을 보니 수신 막대기가 하나만 떠있다. 건물만 들어가면 핸드폰이 안 터지는 - 그래, 여기는 독일이었다.


남편과 나의 독일생활 기간을 합치면 20년이 넘는데 우리는 여전히 캐시온리 지옥에 살고 있다는 걸 망각한다. 몇 년 전 생활 반경에 스위스가 추가되면서부터 더 자주 잊어버린다. 스위스는 동네 시장부터 마트는 물론이고, 심지어 푸드트럭이나 크리스마스마켓에서도 카드를 받으니까.


하늘길도 아니고 도로로 국경만 살짝 넘었을 뿐인데, 독일은 여전히 시간이 멈춰있는 듯하다.





BCG(보스턴컨설팅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작년 한 해 동안 카드와 스마트폰으로 평균 284회  결제했다고 한다. 이는 유럽 내 전자결제 부문에서 하위권 수준이다. 독일보다 카드결제가 적은 나라로는 스페인,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이탈리아, 몰타 등이 있다(출처=t3n.de). 실제로 유럽을 여행해보면 북유럽이 눈에 띄게 카드결제 친화적이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 쪽은 관광객이 모이는 도심을 벗어나면 안 되는 곳들이 많았다.


장기간 거주하며 우리가 보기에 독일 상점들이 카드결제를 거부 혹은 도입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하다. 카드 수수료, 세금, 팁 정산, 그리고 디지털에 대한 불신. 경우에 따라 하나 혹은 여러 개가 해당될 것이다. 매장 위치가 인터넷이 안 터지는 건물 안이라면 전송오류가 잦아서 설치를 안 할 수도 있다. 팁의 경우 독일은 팁이 의무가 아니지만, 현금으로 받으면 깔끔하게 바로 담당직원 주머니로 들어가는데 카드로 주면 매출에도 잡히는 데다, 팁만 따로 빼서 정산해야 하니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결제를 도입한 독일 상점이나 식당들도 상당히 많다. 이런 곳들은 단점이 없어서 설치한 게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손님을 붙잡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덕분에 우리는 ATM을 찾아 커다란 쇼핑몰 전 층을 휘젓고 다녀야만 했고, 앞으로는 그 카페를 다시 가지 않기로 했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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