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쓸모없던 물건이 가져다준 140만 원

여행 수하물분실 대비하기

by 가을밤

비행기를 탔는데 내 몸만 오고 캐리어가 오지 않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캐리어 안에는 업무용 기기, 옷가지, 선물, 세면도구 등 일상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부모님이 챙겨주신 물건들이 들어있다. 여행지에 가는 길이든 돌아오는 길이든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이 일을 우리는 한 해에 두 번이나 겪었다.




# 첫 번째 분실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돌아오는 단 2시간짜리 비행이었다. 이 비행에서 우리의 25인치짜리 캐리어가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크로스백과 홀쭉한 배낭만 달랑 들고 집으로 왔다. 항공사는 루프트한자. 그들은 '업데이트를 기다리라'는 말 밖에 하지 않았다. 우리는 고객센터와 전화하느라 매일 40분씩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고, 30일째 되는 날부터는 매일 직접 공항으로 가서 수하물을 찾아다녔다.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오래된 캐리어들 주변에는 물건 썩는 냄새가 진동했고 우리는 그 사이를 매일 뒤져야 했다.


그렇게 소득 없이 42일이 흘렀다. 43일째 되는 날, 그날도 없으면 포기하려는데 우연히 지나친 어느 사무실 안에 캐리어가 가득했다. 들어가서 보겠다는 나에게 "저 안에는 무조건 없다"라며 보안직원이 말렸다. 나는 그를 밀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지 20초 만에 우리 캐리어를 찾았다. 직원 중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고, 루프트한자의 추적 시스템은 여전히 '찾는 중'이었다.


#두 번째 분실

위 경험을 계기로 우리는 항공사의 수하물 추적 시스템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서랍 속에 굴러다니던 애플의 에어태그였다. 애플제품 중 가장 돈낭비라고 생각해서 언젠가 당근하려고 던져놓은 태그를 남편과 내 캐리어 구석에 넣었고, 우리는 한국에 갔다. 독일로 돌아오는 비행에서 남편의 캐리어가 사라졌다. 역시 루프트한자였다. 아뿔싸, 얼마 전에 겪어놓고 또 당했구나. 루프트한자를 타면 안 됐는데.


저번과 완벽히 동일한 상황이었지만 우리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에어태그. 얼른 앱을 켰더니 남편 캐리어가 뮌헨 공항 근처를 배회하는 게 보였다. 그렇게 며칠간 계속 수하물을 추적했고, 약 일주일 후 캐리어가 우리 도시로 오는 비행기에 실렸다. 우리는 도착 당일 공항으로 달려갔다. 여전히 주인을 잃고 쌓여있는 캐리어 더미를 수 십분 뒤진 끝에 드디어 캐리어를 찾을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루프트한자의 분실수하물 추적 시스템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고, 어느 직원도 정확히 어디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이 두 사건 이후로 루프트한자를 타지 않는다. 만약 타야 하면 수하물을 부치지 않는다.

항공사 수하물 추적 시스템. 업데이트가 거의 되지 않는다. 희망을 버리는 게 좋다.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장난감처럼 생긴 녀석이 우리를 살려준 것이다. 캐리어 안에 명품 따위는 없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많았기에 적어도 1000유로의 값어치는 구해준 셈이다. 이러한 추적장치는 쉽게 구매할 수 있으니 해외 이동이 잦은 분들이라면 필수로 꼭 가방에 넣어두시길 바란다.


항공사의 추적 시스템은 믿을 수도 없을뿐더러, 그들은 고객의 물건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보상신청을 하면 최소 4개월은 걸리므로 여러모로 추적장치를 심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다.


분실 수하물이 쌓인 창고. 최소 1000개는 되어 보였다. 2주 간 매일 갔다.


에어태그로 추적한 캐리어의 위치. 요긴하게 써먹었다.


클레임용으로 제출한 서류들. 캐리어 찾느라 쓴 비용은 끝내 못받았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독일 고인물이 추천하는 크리스마스마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