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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08. 2023

의대 진학을 접었다

제2의 학업

직장인 2년 차 시절,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건가? 내가 계속 이 일을 해서 잘 풀리면 사무실에 계신 부장님이 내 미래인가?'


그리고 이 생각은 다음 생각으로 이어졌다. 

'평생 이 분야만 종사하는 건 너무 편협한데. 다른 분야도 공부하고 싶다.'


고민은 깊고 짧게 행동은 빠르게. 나는 그날 저녁 독일 대학교 4개에 학사과정을 지원했다. 

경제교육학과, 의생명화학과, 그리고 의과대학 둘.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지만 모두 다 여태 내가 걸어온 분야와 180도 달랐다. 어릴 적부터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문과였던 내가, 경제교육을 제외하고 저 두 학과는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그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런 건 아니고, 사실 이전부터 생명이나 의료 쪽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으로 갔던 종합병원의 임상병리과에서 실제로 떼어낸 암덩이와 사람의 장기를 만져 본 경험, 독일 요양원에서 장기간 무료 봉사를 하며 자연스레 이쪽에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나처럼 이미 대학 졸업장이 있는 사람이 다시 학사에 지원하면 독일대학에서는 '제2학업 지원자'로 분류하여 따로 심사를 한다. 물론 제1학업 지원자들보다 자리도 훨씬 적고, 깐깐하게 본다. 이미 한 번 학업을 했고, 외국인에, 심지어 석사도 있고, 직장까지 있는데 '굳이 왜' 다시 공부를 하냐는 취지다. 어느 독일대학이든 비슷하다. 또한 제2학업 지원자들은 고등학교 성적이나 수능성적이 아닌, 가장 최근에 마친 대학 및 대학원의 성적을 본다. 다행히 성적이 좋은 편이라 문제가 될 부분은 없어 보였다. 전공연관이 적은 부분은 동기서에 충분히 설명을 해 두었다. 




몇 개월 뒤 4개 대학 중 의대 하나를 제외하고, 3개 대학에서 Zulassung(입학 허가증)이 왔다. 경제교육, 의생명화학, 의과. 당장이라도 나는 이 학과의 '학사생'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솔직히 될 거란 생각을 못했는데 막상 합격증이 오니 흔들렸다.

결론적으로 나는 어느 학과도 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제2의 학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유는 이러하다. 


30대의 나는 더 이상 20대가 아니었다. 독일 유학을 오던 다소 늦은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나는 독일의 모든 학과를 섭렵(?)하고 싶을 만큼 무모하고 용기 있었고 세상 모든 지식에 대한 궁금함이 하늘을 찔렀다. 나는 그 열정을 고스란히 석사과정에 쏟아부었다. 안 자고 안 먹고 책만 봐도 배불렀는데, 너무 과했는지 석사졸업 후 교수님이 박사를 오라고 몇 번 설득했음에도 도무지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30대의 내 용기는 더 이상 20대의 그것과 같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늦깎이 3-40대 이상 분들이 이제 막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만 18세 독일 아이들과 함께 학업 하시는 걸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그리고 나는 돈을 벌고 있었다. 이제 2년 차 직장인이 벌면 얼마나 벌까. 게다가 당시엔 비자도 엮여있었으니 회사가 제시한 금액에 따를 수밖에 없던 쥐꼬리만 한 월급이었지만, 내 손으로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한다는 건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다. 알바로 돈을 벌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성인이 된 인간이 자기 몸 하나 스스로 건사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드디어 학생 신분을 벗고 하기 시작했는데,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서 기숙사에 살고,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게다가 낯선 이과 혹은 의대공부에서 낙제라도 한다면? 나이 40까지 염치도 직업도 사회경험도 없으면서 가족 얼굴도 못 보고 돈만 까먹는 천하의 불효녀 예약이 불 보듯 뻔했다. 


또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당시 예비신랑이었던 남편은 내 학업에 반대하진 않았다. 그러나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시작점에 섣불리 서는 것과 학업을 마친다 해도 다른 이유들로 원하는 길로 못 가게 될 경우를 우려했다. 당연했다. 자기도 직장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갑자기 외벌이가 되어야 하고, 결혼 후 함께 하기로 했던 계획들까지 모두 수정해야 하니까. 나와의 미래를 꿈꾸는 이 사람 앞에서 내 꿈만 꾸는 건 너무 이기적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둘이 만들어 나갈 미래를 경험하고 싶었다. 


너무 욕심이 많던 나였다. '인생에서 최대한 다양한 공부를 해봐야 돼'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꼭 학업일 필요는 없는데 그저 학업으로서의 길만 찾으려고 했다. 그때까지 인생에서 가장 오래 해본 게 공부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참에 다시 독일 대학진학에 도전해봤고, 합격증도 얻어봤으니 좋은 경험이었다.




결정을 내린 후, 시무룩해있던 며칠간 남편의 위로가 큰 힘이 되었다. 


지금은 직장 생활한 지 얼마 안돼서 여러 가지 의심도 들고, 불안함도 있겠지만 과거 자신의 선택을 믿고 일단 가보라고. 하다 보면 경력이 쌓이고, 경력이 쌓이면 이직도 하며 내 분야를 키워보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나이 40이 됐을 때 '학사 1개 석사 1개 전문분야 1개'를 갖게 될 거고, 경제적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안정될 거라고. 반대로 공부를 하면 '학사 2개 석사 1개'가 있을지 몰라도, 이제 막 갓 졸업한 대학생일 뿐이므로 다시 인턴이나 신입으로 시작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할 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나이를 덜 보는 독일이라 할지라도 20대 초중반에 무려 석박까지 끝낸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그에 비해 나는 30대 후반, 늦으면 40대에 박사도 아닌 학사졸업생이 이제 막 사회로 나올 텐데 아무리 학사가 두 개라 할지라도 과연 그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걸 무기로 내세울 수 있을까? 꼭 우수한 인재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평범하게 단란한 가정을 꾸린 사람들에 비해서도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다.


고민은 깊고 짧게 행동은 빠르게. 

나의 인생모토를 이번에도 지켜냈고, 여전히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의Siora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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