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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05. 2023

이 작은 생명도 이리 부지런한데

우리 집엔 나와 남편 말고 숨 쉬는 생명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올해 초여름 소동물 전문점에서 데려온 햄스터. 독일에서 강아지, 고양이는 샵거래가 금지되어 있지만, 새, 햄스터, 토끼, 기니피그, 도마뱀 등의 작은 동물은 합법적으로 전문점에서 입양 가능하고 계약서도 작성한다. 작은 몸집 때문에 드워프라 부르는 종(種)으로 솜뭉치 같았던 햄스터 아기들 무리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아기로 데려왔다. (햄스터는 아기 때를 제외하고 한 마리씩 키워야 하는 동물이다).


이름은 쿠키.


우리 집에 왔을 때는 태어난 지 두 달밖에 안 된 아기라 두리번거리고 낯설어하더니, 어른이 되고(보통 4개월이면 다 큰다) 적응을 한 지금은 제법 살집이 오르고 입맛도 확실 해졌다. 조금만 달거나 풀향이 나면 안 먹는다. 이것저것 안 사도 되니 덕분에 집사 지갑이 홀쭉해질 일은 없다. (햄스터가 작다고 지출이 적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좌) 입양 당일 쿠키와 형제들. 다들 아기다. (오) 우리집에 온 첫날 쿠키모습


이 작은 것도 생명이라고, 작은 몸집에 어찌 모든 장기가 다 들어있는지 신기하다. 햄스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 비해 인간과 교류가 적으니 과언 '반려' 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이젠 이 작은 생명체가 없으면 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할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있는지 확인하고 밥을 주며 이름을 부르면 쪼르르 달려 나와서 갈갈 알곡 먹는 소리를 낸다. 그러면 내 맘도 편안해진다. 이렇게 너도 나도 어젯밤 잘 잤구나. 이렇게 두 생명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몸집의 크기와 상관없이 충분히 '반려'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은 생명체는 아무리 오래 살아야 3년이라고 한다. 3년 동안 행복한 햄생을 보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집에 데려온 후 공부한답시고 며칠 내내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다. 철장 케이지는 갉아먹기도 하고 안 좋다고 하여 곧바로 커다란 케이지로 옮겨주고, 베딩도 두툼하게 깔아줬다. 알고 보니 독일 햄스터 용품들이 굉장히 유명했다. 모를 땐 하나도 안 보이다 찾아보기 시작하니 다 보이는 마법. 세상에는 얼마나 더 내가 모르는 분야들이 있을까. 요 작은 것이 새 지식을 배우는 기쁨을 주는구나.


여기 햄스터 각선미와 등빨좀 보세요. 먹이접시도 한손으로 끌어버린다.


인스타에 종종 나오는 손 잘 타고 사람 주머니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햄찌들은 정말 소수로, 집사님들이 전생에 덕을 쌓은 경우다. 우리 쿠키는 부끄러움도 많고 겁쟁이라 조금만 손을 태우면 스트레스받아서 볼주머니에 있는 알곡을 죄다 밖으로 꺼내 놓는다. 처음에는 그게 스트레스 반응인 줄 모르고 어찌나 미안한지. 무지했던 집사를 용서해 줘.


그 뒤 우리는 쿠키를 위해 관심을 좀 덜 가지기로 했다. 사람도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회복하듯, 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랬더니 확실히 피하거나 겁내는 것도 줄고 살도 포동포동하게 올랐다.


쿠키는 굉장히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아침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밥을 먹고 오후 5시까지 잠을 자다가, 다시 밥을 먹고 주변을 탐색한 뒤 12시까지 잠을 잔다. 그리고 새벽에 열심히 쳇바퀴를 돌린다. 잠자고 밥 먹고 운동하는 게 전부인 햄생이지만 일정하고 매일 똑같은 부지런함 그 자체다.


(좌) 쳇바퀴계의 에르메스 마라톤휠. 미끄러지지도 않고 소리도 안난다. (우) 새 베딩을 즐기는 쿠키


내가 쿠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 매일 맑은 물을 주는 것. 그리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작은 박스 안이 지루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앞으로도 안전하고 편안한 햄생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



제목,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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