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시끄러운 날의 일기

by 하띠

오늘은 남편이 일찍 출근해야 해서 나 홀로 아이의 등원을 맡았다. 평소라면 아이의 이름을 여러 번 부르며 서둘렀겠지만 오늘 아침은 조금 여유롭다. 3일 동안 휴가를 냈기 때문이다.


아이를 등원시킨 후, 데드라인이 오늘까지인 서류가 불현듯 떠올라 사무실에 잠깐 들렀다가 근처 영어도서관으로 향했다.

며칠 전 개관하여 남편과 아이와 함께 구경을 다녀오긴 했지만, 오전에 가니 사람이 거의 없어 찬찬히 둘러보기에 좋았다. 아이의 수준에 맞는 영어책 몇 권을 빌리고 나서 다시 사무실로 차를 몰았다. 남편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남편의 점심시간에 맞춰 함께 설렁탕을 먹었다. 이제 출근한 지 3시간도 채 안되었건만 남편의 얼굴이 많이 지쳐 보였다. 힘든 남편의 표정은 마치 뭉크의 절규와 같았다.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데 남편은 항상 힘든 일만 맡게 되는 것 같아 늘 안타깝다. 일복도 복이라면 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그래도 남편은 본인이 부서 내 힘든 일을 두루 거쳐야 나중에 배우자인 내가 새로운 일을 배울 때 다른 직원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의 사랑이, 참 눈물겹다.


남편은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고, 나는 은행에 가서 체크카드를 재발급 받았다. 카피가 마시고 싶었는데 마침 은행 옆에 카페가 있어 들어갔다.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옆직원과 수다를 떨던 직원이 카페 문 밖에 있는 키오스크를 가리킨다.


키오스크를 이용해서 주문하는 것이야 요즘 흔한 일이지만,

매장 안으로 이미 들어온 사람에게 다시 매장 밖으로 나가서 주문을 하고 들어오란 말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아 재차 물었다.


그 직원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요즘은 “모든 카페에서

“매장 밖에 있는”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들어와서 먹는다며

마치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라는 듯이 내게 말했다.


그녀의 태도야말로 문명인답지 못했다.


나는 어제도 엊그제도 각기 다른 카페에서

매장 안에 있는 키오스크로 커피를 주문했다.


“다 그렇지는 않아요. “


며칠 내내 심사가 뒤틀려있던 나는

허공에 대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나를 진상 혹은 꼰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랍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속으로만 말했다.

나의 심술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기분 전환 삼아 조금 걷기로 했다.

비가 내린 직후라 바닷가 근처는 조금 추웠다. 영어도서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떡집에 들러 딸이 먹고 싶다던 기정떡을 파는지 물어봤다. 아쉽게도 속에 팥이 들어가거나 쑥이 들어간 떡 밖에 없다고 했다.


도서관으로 돌아와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엔 최명희 작가의 혼불과 박완서 작가의 책들을 읽는 중이다. 그러다 오늘 도서관에서 독서법과 관련한 책이 눈에 띄어 읽어 보았다.

그리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나의 독서법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스타일인데 정작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느낌이라 조금이라도

기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도서관은 아직 새 건물 특유의 냄새가 나긴 하지만

새 책들을 깨끗한 공간에서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3일 내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이 공간을 혼자서 맘껏 누려 볼 생각이다.


근데 그럼 밀린 집안일은 누가 하지?


남편은 가사사용인의 도움을 받자고 했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비용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그런데 잘 따져보니 밀린 집안일로 스트레스받고, 남편과 서로 했니 안 했느니 다투는 것보다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일에 지친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는 편이 경제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최근에 남편과 나의 업무가 동시에 바뀌면서 우리 둘은 힘에 부쳐 허덕이고 있었다. 둘 다 처음 해보는 업무를 맡은 데다가 업무량이 많아 가사와 육아를 동시에 하기에 너무나도 벅찼다.


우리를 조금이라도 배려해 주셨더라면 이렇게 업무 분장을 하시진 않았을 텐데. 하루하루 지쳐가던 나의 마음은 우리의 사정을 모를 리 없는 과장님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어 갔다.


그렇게 내 마음속은 며칠 내내 폭풍우 한가운데에 있었고

급기야 휴가를 내기에 이르렀다.


“하띠 주무관, 나랑 잠깐 이야기할 수 있어?”


과장님의 호출이었다.


나는 깊은 숨을 한번 들이키고

과장님을 따라 상담실로 들어갔다.











매거진의 이전글현관문을 부수고 들어가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