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안식처
“엄마, 우리 오랜만에 고성에 갈까? ”
아이의 한 마디에 시동을 걸고 고성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집에서 35km 정도 떨어진 동해안 최북단의 키즈 카페. 집에서 멀지만 아이가 좋아해서 자주 가는 곳인데 요즘은 좀 뜸했다.
출근한 남편을 대신해 오늘은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들로 선곡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출발할 수 있었다. 차에는 K-pop Demon Hunters 사운드트랙 중 Free라는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원아, free는 자유라는 뜻이야. “
“알아, 자유는 마음껏 뛰어 놀란 뜻이잖아. “
사전적 의미에 갇힌 엄마의 설명보다 아이가 입 밖으로 꺼낸 천진난만한 표현이 훨씬 더 자유에 가까웠다.
“엄마, 이 노래는 왠지 ‘난 이제 드디어 자유야‘, 하면서
뭔가 억울한 느낌으로 노래하는 것 같아.”
이어지는 Soda Pop에 대해서는
“자, 이제 우리 실력을 보여줄까?” 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영어를 이해하진 못하지만 마음이 느끼는 대로 음악을 감상하는 아이의 순수함이 복잡했던 머리와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어주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고 하던데,
우리가 도망친 곳에는 천국이 있었다.
바로 고성이다.
우리 가족은 고성을 사랑한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일상에 지쳐 쉼이 필요할 때 우리 가족은 늘 고성으로 향한다.
나의 삶의 대부분은 7번 국도를 마주한 동해 바다와 함께였다. 태어나고 자란 묵호의 바다는 나의 아버지처럼 강했고, 강릉의 바다는 연인들의 사랑처럼 로맨틱했으며, 속초의 바다는 설악산과 호수와 어우러져 튀지 않는 조화로운 배경 같았다.
고성의 바다를 보면 숨겨 두었던 내 마음을 탁 풀어놓고 싶어진다. 바다와 나 사이에 아무것도 방해하는 것이 없어, 나는 바다에게 바다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기분이 든다.
자연으로 향하는 몰입이 나를 치유한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휘몰아치며 내게 말을 거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맥주 거품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까지 한껏 마시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린다.
오늘은 아이를 위해 키즈 카페를 다녀오느라 고성 바다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도 운전하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바다를 보며 위안을 삼았다.
겨우 찾아낸 보석 같은 우리의 안식처인데 요즘 자꾸만 개발 소식이 들려 마음이 편치 않다. 인간을 감싸 안으며 위로를 건네던 자연이 인간의 탐욕 앞에서 본연의 모습을 잃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자연을, 다시 자유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지난가을 고성 화진포를 찾았을 때 남편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힘들 때마다 자꾸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갈래? “
더 이상은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도록
오늘도, 내일도 평안했으면 좋겠다.
안녕, 고성. 오늘도 고마웠어.
내일도 부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머물러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