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중국집이 하나 있었다. 상호명은 최냉면. 부모님은 계모임날엔 아이들도 데리고 가 짜장면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는데, 그곳이 바로 최냉면이다.
벌써 30년도 지난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식당의 구조는 대략 이렇다. 식당 문을 열면 입구 왼쪽에는 카운터가 있고, 오른쪽에는 테이블이 몇 개가 있다. 그 뒤로 넓지 않은 홀이 펼쳐진다.
특이한 점은 식당에 다락방이 있다는 것이다. 식당에 사람들이 붐비는 날이면 부모님을 따라온 아이들은 작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 다락방에서 짜장면을 먹기도 했다.
달콤하고 윤기가 자르르하던 짜장면은 당시 미취학 아동에게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아니던가. 숨바꼭질하듯 들어간 다락방에서 먹는 짜장면이 얼마나 꿀맛이었던지.
짜장면 한 그릇이 나를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부모님 손을 잡고 따라온 동네 꼬맹이들은 짜장면으로 메뉴를 통일했다. 어른들은 짜장파와 짬뽕파로 나뉘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기준은 짬뽕을 먹을 수 있냐 없냐였다. 새빨간 짬뽕을 먹는 어른들을 보면서 저렇게 매운맛을 견뎌야 어른이 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이의 티를 벗을 무렵 처음 먹은 짬뽕은 의외로 그리 맵지 않았다. 최냉면의 짬뽕은 담백하고 깊은 맛이 났다. 요즘 짬뽕들은 하나같이 누가 더 자극적인지, 누가 더 화려한지 겨루느라 짬뽕의 본질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 같아 아쉽다.
속초에서 그나마 옛 맛을 내는 중국집을 발견해서 가끔씩 들른다. 남편과 나는 짬뽕을, 아이는 짜장면을 먹는다.
내 인생의 첫 짜장면과 짬뽕을 만들어 준 최냉면은
다락방에 꽁꽁 숨겨 놓은 나만의 보물상자이다.
보물상자를 살며시 열어보면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 있던 시간, 추운 겨울 식당 문을 열었을 때 밀려오던 따뜻한 온기, 동네 언니 오빠들과 둘러앉아 서툰 젓가락질로 면을 건져 올리던 정다운 모습을 만난다.
어쩌면 최냉면의 짜장면이 아니라 아무 걱정 없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아닐까. 그렇다고 치부해 버리기엔 최냉면의 짜장면은 정말 맛있었다.
이젠 가끔 꺼내보는 다락방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지만
어린 시절 맛있는 추억을 만들어주신 최냉면 사장님과 주방장님께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기억의 방
엄마라는 이름 뒤에 잠시 접어두었던, 하띠의 지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