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김지현의 글을 읽고 적은 글 2
#(플래)너만 있다면 천하무적
지인들은 말한다. 사람이 어떻게 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냐고. 책만 읽는 것 같은 데 맛집은 다 가고 잊을만하면 강원도에 번쩍, 전라도에 반짝이다 돌아온다고. 넌 정말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 같다고. 그래? 그것은 완전히 틀렸다.
나는 적는 대로 사는 사람이다. 바지런한 일상을 꿸 수 있는 건 프랭클린 캐주얼 플래너. 스무 살 언저리부터 쓰기 시작해 십년 넘게 쓰고 있는 이 친구는 그야말로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 같은 존재다. 크록스에 지비츠를 붙이듯 오늘도 플래너를 펼친 채 뚫린 구멍에 욕망의 자수를 놓는다. 게다가 저녁에만 쓰는 이른바 home 다이어리가 있어 매일이 크로스 체크가 되는 건 기본이다. 이는 매주 쓰는 엑셀 가계부 시간에 꽤 도움이 된다. 웬만하면 영수증을 받지 않기 때문에 카드 내역만 봤을 땐 ‘어? 이거 뭐더라? 이날 뭐했지?’ 하는 것도 <프랭클린>과 <home>만 펼치면 칠흑 같은 야밤에 흰머리 집듯 쭉, 하고 기억이란 환기구로 빨려 오기 때문.
추신.
다이어리 꿀팁은 아직 방출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프라인으로. 힌트는 스티커.
#우리 집에서 제일 비싼 가구
내게는 할머니 두 분이 계셨다가 올 여름 외할머니가 먼저 소천 하셨다. 결혼할 때 외할머니는 쌈짓돈 백만 원을 깨서 봉투에 넣어 주셨다. 꼭 필요할 때 쓰라고. 하지만 할머니는 손녀를 잘 모르셨다. 명품은 1도 관심이 없고 물욕이라고는 없는 내가 결혼 했다고 해서 갑자기 사고 싶은 게 생길 리 만무했다. 이미 웬만한 가전이나 가구는 다 사두었기 때문에(3월에 상견례를 하고 10월에 식을 올렸다. 역시나 프랭클린 덕으로 이미 8.12일자 인사발령 전에 신혼여행 엑셀 까지 모두 마쳤다) 감사히 받아두었다. 그때는 참 순진해서 그 돈을 어디에 요긴하게 쓸지 남편과 의논까지 했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오후, 소파에 늘어져 있는데 문득 책상을 사라는 계시가 들렸다. tv를 안 들이는 조건으로 리클라이너와 빔을 샀는데 못내 거실에 두지 못한 다이닝 테이블이 계속 눈에 밟혔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나의 욕망이 백 퍼센트 투영된 마음의 소리다. 서재만큼은 각자의 책상에서 온전한 기록생활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리하여 결혼 전에 쿠팡에서 10만원을 주고 산, 내가 쓰던 책상은 남편이 나는 정확히 그 열배인 백만 원에 가까운 거금을 주고 당시 신상으로 나왔던 일룸 모션 데스크를 가지게 된다. 예상했던 대로 남편은 무슨 책상을 백만 원이나 주고 사냐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연애 3년, 신혼 1년. 처음으로 파경의 위기가 왔다.
결혼 6년차. 남편은 그것이 내게 자신만큼 소중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내 책상 근처엔 얼씬도 안 한다(아마 꼴 보기 싫은 것도 있을 듯). 그리고 하나 더. 결혼하고 몇 번의 이사에서 꽤 감동을 받았다. 현관문을 열고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는 인부에게 하는 첫마디. “우리 집에서 제일 비싼 게 저 책상이에요. 다들 조심해주세요.”
그렇다. 남편은 아는 것이다. 백만 원이 또 수백만 원으로 둔갑할 기적에 대하여.
자신은 결코 백만 원짜리 책상은 물려받고 싶지 않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남편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가끔은 콧등이 시큰거리는 이유다.
#네버랜드
도서관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공공재라 생각한다. 동시에 눈먼 자들의 도시 속 방공호다. 전국의 예비군처럼 그것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특히 9월은 독서의 달이라 더 행사가 많다. 이용자로선 연중 가장 반가운 달이다.
이곳은 굉장히 특이하다. 지역주민이라면 누구나 도서관 카드를 발급 받지만 동백전의 전파 속도를 못 따라간다. 시립에 구립, 심지어 아파트 내 작은 도서관까지 있지만 누구에게는 은행 atm 기계 하나만 못하다. 도서관 카드는 어떻고. 설령 소지하고 있어도 매일 들고 다니는 지갑에선 처음부터 열외 되기 일쑤. 그래서 기술 강국인 우리나라의 도서관협회는 모바일 회원증 이란 걸 만든다. 앱 결제처럼 실물카드가 없어도 바코드로 찍고 입장 가능하다. 하지만 커다란 열화상 모니터 앞에서 우리는 자주 주저한다. 죄 없는 가방을 뒤진 체.
전집 하나 사주지 않았던 부모님 덕분에 도서관은 내게 우물 같은 곳이다. 목마른 자가 땅을 판다고 했던가. 생일날 한 권만 사주는 책들이 그렇게 감질났다. 친구 집에 가면 내가 모르는 세계가 한 가득인데 나만 흑백tv에 갇힌 것 같았다. 학년이 올라가자 스스로 오색 빛 산호가 있는 바다에 가 보기로 했다.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도서관 사서 쌤으로부터 쭈뼛거리며 출입 카드를 발급받은 순간을. 그것은 마치 ‘이제 마음껏 와도 된다.는 네버랜드 여권이었다. 그곳은 수업이 끝나고 갈 곳이 없었던 아이들이 찾는 방과 후 놀이터였다. 맞벌이였던 부모님의 부재를 그렇게 도서관이 채워주었다. 레고 세트 하나 부럽지 않도록 드넓고 따뜻하게.
인생의 과제를 하나씩 지워 갈 때마다 언제나 그곳이 있었다. 스무 살 언저리엔 공강 시간을 아껴서 매일 도서관 의자에 파묻혀 지냈다. 물론 부모가 기대하는 정독실 의자가 아닌 DVD실 좌석이었다. 그렇게 매일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야 셔틀버스를 타러 퇴실했다. 사는 게 먹먹할 때나 외로울 때도 도서관에 갔다. 도저히 혼밥을 못할 때도 빵과 두유를 사 서가에서 숨죽여 먹였다. 지금 같으면 혼자서 여유 있게 먹었을 테지만 그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의 귀퉁이가 자주 접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이십년도 지나 삼십대의 아줌마는 아직도 네버랜드에 간다. 물론 도시 속 방공호이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만 간다. 사람들은 아직도 내가 네버랜드로 가는 진 모른다. 비밀스러운 이 즐거움을 아흔이 넘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맛보고 싶다. 나의 장래희망은 바로 도서관 다니는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트여지도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언제부터 내가 그림에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그것은 초등학교 6학년, 안현진의 그림을 보고나서였다. 세상에. 내가 아는 하늘은 옅은 파란색에다 가로등은 길쭉한 회색 몽둥인데 왜 이 아이의 스케치북에는 하늘이 봉숭아 빛이고 가로등은 나무같이 우아하게 빛의 방향에 따라 휘어져 있나. 그야말로 컬처 쇼크.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 본 파리가 이랬던가. 현진이의 그림은 소풍가는 날이면 알새우칩에 연양갱 하나, 바나나 우유만 고집하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아이의 작품엔 새우 분말을 뭉쳐서 튀긴 게 아닌 탱글거리는 진짜 새우가 있었고, 팥소 가득한 수제 단팥젤리로 가득 했으며 생바나나 주스가 있었다. 12색 크레파스만 써 본 아이가 48색 크레파스가 있다는 걸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이런 세계도 있구나. 그때 알았다. 문진으로 책을 누르듯 그날의 수채화 한 장이 내 인생을 뭉근하게 누를 거라는 것을. 그래, 그림도 공부를 해야겠구나.
취업을 하고 엄마와 반년 넘게 싸웠는데 그것은 돈 관리였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이기도 했지만 6개월 동안 단돈 10만 원 짜리 적금 하나 들지 않고 월급을 있는 그대로 다 썼다. 지출 1순위가 분식집과 서울 전시회였다. 틈만 나면 KTX를 끊어 온 서울을 헤집고 다녔다. 그림은 말할 것도 없고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등 입소문난 전시부터 이태원 구석에 있는 갤러리까지 거의 매주 상경했다. 그때 알았다. 미술관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전시도 전시지만 그것을 담고 있는 백자 같은 미술관 안에서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마다 각각의 아우라가 있었다. 마치 개미지옥에서 탈출한 개미가 또 다른 개미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듯 자석처럼 이끌렸다. 아름다움이란 걸 비로소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전시 기획은 말할 것도 없고 작품 옆 큐레이터가 타이핑한 글은 한여름 비빔면에 올려진 아삭한 오이처럼 청량했다. 에듀케이터의 미술 교육 프로그램은 또 어떻고. 그렇게 그림을 보고 틈나는 대로 화집을 사 모으고 미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끝내 수채화를 배우기에 이르렀다. 요즘은 색에 대한 세심함을 기르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컬러풀한 서예, 보태니컬 아트를 시작했다. 수채화 연습은 일 년도 넘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구만리다. 그러나 그 옛날 현진이의 그림에서 불현듯 느꼈던 그 강렬한 마음이 나를 평생, 아트여지도 위에 서게 할 것임을 나는 안다. 작은 바람은 즐거운 길동무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다.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현경의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책 제목을 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