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소서

by 팥앙금

일기러

뒤를 돌아보거나 과거를 곱씹으며 후회하는 시간(부동산 빼고)을 좀처럼 못 참는다. 더욱이 사람은 ‘반성’을 해야 성장이 있다고 하는데 반성이란 걸 모르고 사는 사람. 쓰고 보니 이상하지만, 역설적으로 매일 아침 전날 일기를 쓴다.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 체크리스트를 먼저 챙길 것 같지만, 체크리스트는 항상 자기 전 써두고 아침엔 전날 일기를 쓰는 나. 문제는 하루 묵은 감정의 골이 아직도 깊다는 것이고, 정제된 줄 알았던 아침 공기가 종종 화염으로 휩싸인다는 것.

추신.

이 단락을 쓰면서 내가 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매일 아침 몰스킨에 글을 쓸 때만 해도 그저 일기만큼은 꾸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키든, 사노 요코든, 한수희든. 심지어 문보영의 <일기시대>를 사고 며칠을 행복했던 제주의 밤처럼, 나는 내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일기’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었구나.


나의 뱀똬리

어떤 사람이 몹시 부러워죽겠는 상황이 최근 있었는데, 그때도 가슴에 고춧가루를 뿌린 것처럼 따가웠다. 마치 갓 데친 숙주나물에 시뻘건 고춧가루를 끼얹는 느낌이었다. 홧병인가 싶을 정도로 태어나 처음 느껴본 그 감정이 강렬했다. 문제는 며칠 전 있었던 갈등상황도 거의 흡사한 느낌. 강도는 확실히 낮지만 이건 온종일 머릿속에 뱀 똬리를 이고 지내는 기분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이 무거움의 1g도 나눌 수 없었다(원래 감정을 사람과 대화로 푸는 성격이 아니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5명이라면, 싫어하는 사람도 5명이라고, 항상 호불호는 세트로 온다고 생각하면서 지내기 때문에 대다수의 ‘불’은 내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문제는 5명의 ‘호’중에서 1명의 ‘불’이다. 이 한 명이 내겐 예수의 잃은 양과 같다. 얼른 집 나간 그 마음을 내게로 다시 돌리고 싶어 안달이 난단 말이지.


나무늘보와 정좀머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아직까진 결혼이다(물론 오래 살다간 이혼이 될 수도 있겠다). 감히 결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내게 남편이란 불을 지피는 사람이다. 늘 어디서 장작개비만 주워 오는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앙금이, 이걸로 어떻게 불 피울래?” 그렇다. 질문만 보면 영락없는 상사다. 문제는 그이 앞에만 서면 마른 장작 같은 내 삶에도 작은 불씨가 보인다는 것.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술 영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일기만큼이나 인터뷰도 좋아하는 나), 트레킹하는 여행... 인생의 숲에서 내가 생각할때 나를 풍요롭게 할 장작을 끝없이 모은다. 행여 욕심에 이고 온 장작이 떨어질라 가끔씩 숨고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개인사로 늘 분주하다. 이 바쁜 내 삶에 나무늘보 한 마리가 끼어든 지 벌써 6년. 그 작은 눈으로 장작개비를 찬찬히 분류해서 다음엔 이 지점에서 캠프파이어 한번 해보자며 전략을 짜준다. 퇴근하면 소파와 찰떡이 되는 남편의 말이 가소롭지만 언제나 이 나무늘보는 자격증도, 승진시험도 천천히 다 해내왔다. 그래서 나는 자주 화가 난다. 성격 급하기로 치면 누구 못지않은 내가 나무늘보에게 코칭을 받다니. 무심한 척 그의 평온한 일상에 정좀머가 나무를 흔들어대는 이유다.

가끔 나무에서 떨어져 다시 나무 위로 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밑에서 올려다보는 그이는 전보다 더 행복해보인다. 깊게 느껴진다. 이렇게 우린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세계를 이고 산다. 물론 난 여전히 장작개비를 모을줄만 아는 정좀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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